붉은 군대의 수호신 (소련의 포병 ) 1 - 야포 - (펌글)
붉은 군대의 포병선호는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스탈린은 포병을 전쟁의 신(the God of War)이라고 까지 극찬했으며 전쟁을 승리도 이끄는 무기라고 믿었다. 소련육군은 1930년대에 포병화력의 현대화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 1940년대에는 매우 다양하고 효율적인 포병전력을 구축하게 된다.
소련의 230mm 곡사포
1941년 독일의 강력한 침공으로 붉은 군대는 엄청난 혼란과 함께 수많은 장비와 병력을 상실했으며 이의 회복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으나 전쟁 말기 붉은 군대는 강력한 포병전력을 다시 되찾게 되었다.
간접 조준 사격 Indirect Fire
간접 조준사격은 공격을 준비하는 수단으로써, 공격하는 아군의 전방에 방어벽을 제공하는 임무와 대 포병 격파의 임무를 수행한다. 통신의 열악함 때문에 소련의 포병교리는 공격기간, 일, 시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요구하게 된다. 사전준비단계는 필수적이었는데 미국이나 영국처럼 관측장교의 즉각적인 포격요청을 유연하게 대처하기에는 소련군의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이와 같이 준비된 포격은 적의 거점에 격렬한 포격을 가해 타격을 가하며 이로인해 적 방어선의 벌어진 틈 사이로 보병이 용이하게 진격하게 할 수 있었다. 전쟁이 진행될수록 붉은 군대의 야포들은 더욱 더 집중운용되어 대전말 포병 밀집도는 1마일당 320-480문에 달하였다. 이를 방어하던 독일군들은 소련의 포격이 모든 것을 뭉게버릴정도로 강력하지만 정확하다거나 정교하지는 않다고 보고를 올렸다.
ML-20 152mm 곡사포
이에 능숙한 독일군 지휘관, 예를 들어 하인리치 (Heinrici : 방어전의 달인 - the Battle of Seelow Heights in 1945 파트 1, 2를 읽어보라 (필자 주)) 대장 (Colonel General : Generaloberst 찾아보니 원수 바로 아래도 계습상 2번째로 높은 단계라 하는데요. 북한군 계급으로는 상장이라고.....이걸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 아시는 분은 가르침을 주세욤. 그러고 보니 스탈린 그라드의 파울루스도 이 계급인데..)은 소련은 예정된 포격이 시작되기 바로 전 자신들의 전진 방어선을 철수시킨다는 것을 알고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붉은 군대는 122mm 곡사포를 간접조준사격의 근간으로 하였으며 152mm포는 보충적으로 사용하였다. 군단급의 122mm와 152mm 곡사포는 적의 강력한 거점을 분쇄하는데 사용되었다.
직접 조준 사격 The Direct Fire
붉은 군대는 동시대의 군대들보다 직접사격의 역할을 대단히 강조하였다. 소련의 포병교리는 포병들이 포를 전방으로 끌고나와 눈에 보이는 적들을 쓸어버리는 것을 독려했다. 여기엔 몇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 직접사격은 간접사격에 비해 탄약의 낭비가 적다. (간접사격은 적을 격파하는데 비능률적이라 간주되었다.) 소련 개전초기 심각한 포탄 부족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포탄공장들이 야포 공장보다 훨씬 서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1941년 독일의 신속한 침공으로 화포공장들이 안전하게 철수하는 동안 포탄 설비들이 점령당했다.
결론적으로, 화포생산량과 포탄 생산량 사이에는 심각한 불균형이 초래되었다. 1942년 말에 이르러 소련의 화포 생산량의 증가비율은 포탄 생산의 그것보다 3배이상 초과하게 되었다. 이러한 포탄 부족은 직접사격을 독려하게 만들었다.
76.2mm Obr.1972 보병포를 진지로 진입시키는 소련군
또한, 붉은 군대는 항상 무전기가 부족했고 이는 신속한 포병사격을 위한 방열을 어렵게 만들었다. 소련 군대는 주로 가설 전화를 이용해 통신했고 전화선을 매설하는 것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으며 적의 사격에 쉽게 파손되었다.
마지막으로, 붉은 군대의 교육수준은 동시대의 다른 군대들의 평균보다 낮았다는 것이다. 붉은 군대와 같은 규모의 군대에서 이들은 충분히 훈련시킨다는 것은 힘들었다. 그래서 포반원들은 종종 적의 면전(?)에 직접 대고 쏠 수밖에 없었다.
적의 면전에 포탄을 날리는 76.2mm ZIS-3
직접사격의 강조로 인하여 붉은 군대의 포는 가능한 가볍게 제작되었다. 이는 전선에서 새로운 포진지로의 이동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최전선에 있다는 것은 다른나라의 포병들과 마찬가지로 붉은 군대의 포병들에게도 생명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될수록 포반원들은 점점 능숙한 기량를 갖추게 되었다. 에브게니 모뉴슈코(Evgenii Monyushko)는 1942년의 산도레미즈(Sandomierz) 교두보 전투에서 자신과 자신의 포반원들이 야포를 어떻게 다루었나를 회상했다.
'가신 양쪽으로 두 개의 호를 팠어요. 하나는 포수용, 다른 하나는 장전수용이었죠. 사실 ZIS-3를 운용하는데 있어서 많은 포병들이 필요치 않아요. 심지어 이 포는 사격할 때 한명만으로도 운용이 가능했죠. 사수는 사격을 하고 뒤의 엄폐호로 숨는 동안 장전수는 포신안에 다음 한발을 밀어넣죠. 그럼 이제 사수는 나와서 조준하고 사격하는동안 장전수는 숨어 있었어요. 심지어 적의 포격에 명중당한다고 해도 최소한 한 두명은 살 수 있었죠. 다른 포반원들은 근처에 파둔 엄폐호들로 퍼져있었고요. 실전에서의 이러한 경험으로 쿠르스크 전투에서 포병들의 희생이 최소화 되었었죠.'
붉은 군대 포병의 주화력은 76.2mm ZIS-3였다. 공식적으로 1942년 초에 채택되어 사용되었으며 76.2mm M.1936을 대체하는 물건이었다. M.1936은 우수한 포이긴 하지만 너무 무겁고, 소련군의 주머니 사정에 비하면 너무 비쌌다. M.1936을 개량하고 경량화 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그 결과물이 단축한 포신을 장착한 M.1939 혹은 F-22 USV였다. 바바로사 이후 독일군은 F-22의 포가를 만든 공장를 점령하였으나 포를 만드는 공장을 점령하진 못했다.이런 결과 ZIS-3는 M.1939의 포신과 57mm ZIS-2 57mm 대전차포의 포가가 조합되게 되었다. ZIS-2의 포가는 76.2mm포의 반동을 견디지 못해서 머즐 브레이크가 추가된다. (소련 최초)
F-22 USV
ZIS-3는 생산에 알맞게 고안되고 단순화 된 물건이다. M1936을 조립하기 위해선 2,034시간이, M.1939를 위해선 1,300시간이 필요했지만 ZIS-3는 단 909시간만 있으면 충분했다. 48,000문 이상의 ZIS-3가 생산되었으며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많은 국가에서 주력야포로 쓰이게 되었다.
ZIS-3는 그 크기에 비해 매우 경량화 되었으며 간접조준사격보다 직접사격 용도에 주로 쓰였다. 또한 대 보병용과 대전차용의 두가지 역할을 부여받았다. 소련의 포병 교리는 모든 야포는 상황이 요구한다면 대전차 임무가 가능해야 했다. 대전차탄이 없을 경우 고폭탄을 이용해서라도 독일전차를 잡아야 했다.
전장에서 독일 전차병들은 대구경 야포가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수 있었다. - 122mm, 152mm 심지어 그 이상의 포가 말이다!
러시아 전선의 leFH18
비록 독일의 표준 중구경 야포(the 10.5cm leFH18 howitzer)보단 작은 구경이었지,ZIS-3는 더 긴 사정거리를 가졌다. 러시아 야포들의 중량은 독일 야포들에 비해 거의 절반 정도였지만, 발사속도는 훨씬 상회했다. 물론 76.2mm포의 포탄위력은 10.5cm에 비할것은 못되지만 러시아 포병들의 직접사격이 그것을 보상했다.
주인을 배신한 4가지 없는 ZIS-3
독일군들은 ZIS-3를 그 특유의 발사음 때문에 'Ratsch-Bum'이라고 불렀다. 포탄이 발사될 때 'Ratsch'라는 경쾌한 소리가 그 다음 폭발시에는 'Bum'이라는 가벼운 폭발음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독일군은 ZIS-3에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으며 노회한 수많은 ZIS-3의 포구를 그들의 전 주인에게 되돌리게 만들었다. 독일에서 ZIS-3의 공식명칭은 7.62cm FK 288(r)이라 불렸다.
소련의 주력 화포 The Main Soviet Guns
야 포 Field Artillery
ZiS-3 76.2mm
중 량 : 1,120kg
포탄중량 : 6.21kg
최대 사거리 : 13,000m
발사속도 : 분당 최대 25 발
사단급 지원 화포 Divisional Level Support
Obr.1938 122mm Howitzer
중 량 : 2,250kg
포탄중량 : 21.76kg
최대 사거리 : 12,100m
발사속도 : 분당 5-6 발
Obr.1939 152mm Gun-Howitzer (ML-20)
중 량 : 7,128kg
포탄중량 : 43.5kg
최대 사거리 : 17,265m
발사속도 : 분당 1발
군단급 지원 화포 Corps Level Support
Obr.1931/37 122mm Gun (A-19)
중 량 : 7,907kg
포탄중량 : 25kg
최대 사거리 : 20,400m
발사속도 : 분당 5-6 발
Obr.1938 152mm Howitzer (M-10)
중 량 : 4,100kg
포탄중량 : 40kg
최대 사거리 : 12,400m
발사속도 : 분당 2-4 발
박격포와 로켓 Mortars and Rockets
붉은 군대는 수종의 중구경 박격포를 비롯한 박격포를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다. 박격포는 종종 통상 포병과 같은 규모로 채택되었다. 박격포의 장점은 생산하기 쉬우며, 가벼운 중량은 이동하기 쉬웠다. (항상 화포견인트럭이 부족했던 소련군에게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소련군은 50mm, 82mm, 107mm, 120mm , 160mm 박격포를 채용하였으며 120mm는 전쟁동안 최고의 포병장비중 하나로 꼽혔으며 16kg의 포탄은 6,000m까지 날려보낼수 있었다. 독일군은 이 박격포의 장점을 알고 이를 카피해 사용하기도 했다.
1942년 9월, 코카서스에서 작전중인 120mm 박격포 (120-HM 38)
거대한 160mm박격포의 포탄은 152mm 곡사포보다 더욱 많은 고폭약을 내장하고 있었으며 (160mm 탄의 무게는 41.14kg에 달했다. ) 전쟁 기간동안 소련이 새로 개발 투입한 유일한 박격포였다.
러시아군은 또한 대량의 로켓 포병을 보유했으며 공격 개시전 막대한 양을 적에게 쏟아부어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수 있었다.. 소련은 1930년대 초 레닌그라드의 G.D.L(Gas Dynamics Laboratory)에서 로켓무기의 개발을 진행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일급 기밀로 간주되었으며 아주 약간의 정보만이 소련 로켓공학이란 이름으로 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로켓 포병대는 “Guards Mortar"라 불리며 그들의 실체를 숨겨야 했다.
M-30 발사대에서 발사되는 300mm로켓은 파시스트들은 부드럽게 어루만져 줄것이다
로켓 포병의 첫 번째 실전은 1941년 7월 오르스치(Orszy) 근방에서 독일군과의 전투였으며 독일군을 매우 놀라게 만들었다. 독일군들은 이 로켓발사기 (카츄사Katyusha라고 불리며 Katie나 작은 Kate)에서 발사되는 막대한 화력을 증오하고 공포스러워 했으며 이 반갑지 않은 아가씨들은 인기척도 없이 그들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우선 개발된 로켓은 82mm으로서 M-8발사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M-8은 36발의 82mm 로켓을 3개의 조로 편성된 발시기에 장착되었으며 얼마안가 M-13발사기가 개발되었고 16개의 132mm로켓을 두조에 장착했다. 이 두가지 종류의 로켓들은 트럭뿐만 아니라 T-60이나 T-70같은 전차들 그리고 화포 견인트럭이나 심지어 노획한 차량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플랫폼에 장착이 가능했다.
레닌(그라드)을 위해 울려퍼지는 스탈린의 오르간 연주
300mm와 310mm 대구경 로켓들도 사용되었다. 이들은 주로 지상의 고정된 발사기에서 운용되었다. 이 로켓들은 미리 준비되고 예정된 공격에 사용되었으며 M-31 이동 발사기에 탑재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