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병전사

2-1~2 한국의 무기체계 발전과정

103ROTC #20 LTC / On Artillery 2007. 7. 18. 09:30
 

제2장  한국의 무기체계 발전과정


제 1 절  개    요


과학자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인간이란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라고 했듯이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를 거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선진국은 주도권을 명분으로, 후진국은 자기생존을 위해서 끊임없이 도구(무기)를 만들어 사용하여 왔다.

특히, 인간은 원시시대로부터 집단생활을 시작하면서 물질적인 욕구 또는 상대를 지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분쟁을 치뤄왔으며, 이러한 분쟁에서 좀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거나 상대를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던 돌, 창, 칼에 이어 화약에너지를 이용하여 물체를 날려 보내는 소 /대구경의 총포 등이 바로 화력무기체계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다.

화력무기체계는 강력한 화력(화약에너지)에 의하여 적의 전쟁수행체계와 전투력을 마비시키며, 효율적인 화력지원으로 전투부대의 성공적인 기동을 보장하는 전투력 구성 및 전투력 발휘의 핵심기능이며,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운용되는 무기체계이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무기체계발전과정을 시대별로 구분하면

  ① 무기체계가 변화하는 1377년(최무선의 화약발명), 1592년(조총 등장), 1863년(대원군 집권), 1945년(현대식 무기)의 전환점을 고려하는 방법

  ② 고대, 고려, 조선, 근대, 현대의 시대별 구분방법이 고려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의 특성상(무기기술 변화의 폭이 협소, 무기기술의 변화 기회가 조선시대에만 편중, 왕조별 상이한 국호 등) ②번의 시대별 구분방법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제 2 절  고대의 무기


1. 선사시대의 무기

가.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혈통관계를 유지하며 20~30여명 정도가 집단을 이루어 공동생활을 하면서 식량을 얻기 위해 채집과 수렵을 생업으로 할 때, 사용한 석기를 살펴보자.

(1) 석기의 종류

구    분

내    용

비    고

전기 석기시대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다소 뭉툭함

중기 석기시대

찌르개, 찍개, 주먹도끼, 돌망치, 사냥돌

조금 뭉툭함

후기 석기시대

주먹도끼, 찌르개, 찍개

날카로움


2.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주민들은 움집에서 살면서 식량공급을 위주로 하는 경제생활을 하였다고 믿어지며, 후기에 들어가서는 원시적이나마 잡곡의 재배도 이루어졌다고 본다.1)

이 때 개개인 상호간 또는 소수집단과 집단간에 싸움이 있었을 것인데, 따라서 활, 돌, 도끼, 돌창 등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무기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본다.


 가. 각종 무기

(1) 석창

원시사회에 있어 가장 위력적인 무기의 하나가 바로 석창이다.

이 종류는 타제와 마제, 그리고 형태에도 뿌리가 있는 석창, 없는 석창 등이 있다.

(2) 활

포병무기의 시초라고 본다. 즉, 간접적으로 적을 살상하게 되는 최초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즉, 칼과 창에 비해서는 원거리 무기였다.

활은 원시사회에서부터 사용되어 화약무기가 사용된 중세를 거쳐 총의 제작이 성행한 근세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사용해온 기본무기의 하나였다.

구성은 활촉, 화살대, 화살로 이루어졌고, 신석기시대의 화살 유물로서는 활촉만이 남아있다.


3.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

서기 전 300년경을 전후한 시기를 청동기시대라고 하고 청동기 시대후기에 한반도에는 철기가 나타나는데 이 시기를 초기 철기시대라고 한다. 청동기 시대후기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이르는 시기는 문헌학상 고조선 및 삼한 시대에 해당된다.

가. 원거리 무기2)

원거리 무기에는 쏘는 무기인 활과 화살 및 활촉이 있다.

나. 근거리 무기3)

근거리무기는 베는 무기인 각종 칼이 있으며 찌르는 무기, 걸어당기는 무기, 내려치는 무기 등이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와 같이 선행의 신석기시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기류가 청동기 초기철기시대에 이르러 다량으로 나타나고 또, 금속제의 전형적인 무기류가 등장함으로 보아 사람을 상대로 하는 전투에 쓰이는 무기로서 독립하게 됨은 이 시대부터라고 하겠다.


4. 삼국시대의 무기

한국사에 있어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이때 전투도구인 무기를 살펴본다는 것은 고대의 포병관련된 무기를 규명해보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관계문헌이 충분치 않고 연구자료도 없다. 다만, 고고학 자료인 고분출토의 무기류와 고구려 고군벽화 자료에 의존 할 수 밖에 없다는 아쉬운 점이 있다.

공격용 무기와 방어용 무기와 기타 전투용구로 분류된다. 공격용 무기란 적의 병력과 전투기재를 소멸하는데 쓰는 무기를 말하며, 기타 전투용구란 군대의 전투행동을 보존하기위한 여러가지 기재들, 즉 통신기재, 수송기재, 군기, 악기 등을 말한다.4)

이 중에서 중요한 것은 공격용 무기이다. 이것은 전투의 승리보장에서 주된 역할을 하고 전투방법과 군대의 조직편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방어용 무기는 일반적으로 공격용 무기의 영향하에서 발생하고 공격용 무기의 발전에 따라서 발전하는 것이며 반대로 공격용 무기의 발전에 영향을 준다.

기타 전투용구는 적에게 직접 영향을 주지 못하며 따라서 이것은 전투에서 종속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없이 공격용 무기와 방어용 무기는 그 효과를 충분히 나타낼 수 없으며 전투행동을 성과있게 진행할 수 없다.

이와 같이 공격용 무기, 방어용 무기, 기타 전투용구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그 이용에서 각기 일정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공격용 무기는 쓸모에 따라 원거리 무기, 근거리 무기, 공성, 수성 무기 등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 원거리 무기에는 쏘는 무기인 활, 쇠뇌, 근거리 무기에는 베는 무기인 검과 칼, 찌르는 무기인 철창, 걸어 당기는 무기, 내려치는 무기 등이 있다.

가. 고구려

고구려는 일찍부터 중국의 강한 나라들과 수 차례에 걸쳐서 전쟁을 치렀으며, 뛰어난 전략전술과 함께 발달된 무기를 보유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해지는 것은 백제, 신라, 가야 등 삼국시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빈약하다.

(1) 원거리 무기

(가) 활

활은 원시시대로부터 화약무기가 쓰인 중세, 근세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사용해온 기본적인 무기의 하나였다. 그러나 활은 나무, 짐승의 뿔, 뼈 등 유기물질로 만들어졌던 관계로 쇠로 만든 다른 무기들과는 달리 온전하게 남은 것은 없다.

(나) 화살

화살은 화살대, 깃, 화살촉으로 이루어졌다.

고구려의 화살은 실물이 없어 문헌과 고분벽화에 의거하여 짐작할 수밖에 없다. 고분벽화의 활 쏘는 장면의 그림은 화살대의 길이를 대체로 짐작케 하므로 적어도 60~70㎝ 되었을 것이다.

깃은 화살의 비행방향을 고정시키고 그의 추진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그 재료는 새 날개의 털을 사용하였을 것이며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보면 흰색과 검은색의 것 두 종류가 있는데 어떤 새의 날개인지는 알 수 없다.

일본의 문헌에 의하면 꿩의 날개?꼬리 등의 털, 매의 날개털, 산새의 꼬리털 등이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어5) 고구려의 화살대의 깃도 이러한 것들이라고 추측된다.

화살촉은 기능과 형태에 의거하여 4형식으로 나눌 수 있겠다. 곡, 1형식은 무경촉, 2형식은 유경촉, 3형식은 유익촉 등이다.

(2) 근거리 무기

고구려의 근거리 무기에는 베는 무기인 검, 칼, 찌르는 무기인 쇠창, 걸어 당기는 무기인 갈고리, 쇠낫, 내려치는 무기인 쇠도끼 등이 있다.

(가) 검, 칼

검과 칼은 손에 쥐고 적을 찌른다든가, 베는데 쓰이는 무기로서 근접전에 주로 쓰였다. 이러한 검과 도에 있어, 날이 양쪽에 있는 것을 검이라 하고 한 쪽에만 날이 있는 것을 도(칼)라고 하며, 그 길이장단에 따라 긴 것은 대검, 대도, 30㎝ 미만의 짧은 것은 단검, 단도, 아주 짧은 손칼은 도자라고 부른다.

1) 검

검은 베기도 하나 기본적으로는 찌르는 무기이다. 고구려에 있어서는 직도의 유품에 비하여 검의 유품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2) 도

도는 찌르는데 쓰이기도 하나 기본적으로 베는 무기이다. 고구려의 도에는 대도, 단도, 환두대도 등이 있다.

나. 백제

백제의 무기에 관하여서는 문헌기록의 결여로 백제고분에서 드러난 유물에 의존하여 논술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극히 일부분에 한정되겠고 그전문의 파악은 불가능하다.

백제의 무기로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에는 공격용 무기 중 원거리무기인 활, 화살촉 등과 근거리 무기인 대도, 환두대도, 도자 등이 있는데 신라, 가야 등에 있는 유극 무기는 알려진 바 없다. 이러한 무기를 백제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1) 원거리 무기

백제의 원거리 무기에는 쏘는 무기인 활?화살 등이 있는데, 활과 화살촉의 일부는 남아있으나 유기질의 용재로 만들어진 화살대?깃 등은 남아있는 것이 없어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가) 활

백제 활은 전남 나루에서 유물 1점이 드러난 것 뿐이다.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활채의 창 밑부분에서 정탈목을 지난 활 고자 부분이 휘어진 모양으로 나타났다.

(나) 화살

화살은 화살대, 깃, 화살촉 등으로 구성되나 화살대, 깃 등은 부식되기 쉬운 재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유존 예가 없어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2) 근거리 무기

백제의 근거리무기에는 베는 무기인 검?도, 찌르는 무기인 철창, 걸어 당기는 무기인 철구, 내려치는 무기 등이 있다.

(가) 검, 도

지금까지 알려진 백제 검은 단검, 대검 합하여 5자루에 불과하나 단도, 대도 합하여 26자루가 알려진 백제도에 비하여 매우 적은 수량이다.

이러한 실정은 백제에 있어 찌르는 기능이 뛰어난 쌍날칼인 검보다 기마전에 있어 말 타고 베기쉬운 외날칼인 도가 성행한데 기인하지 않는가도 생각케한다.

외칼날인 도에는 길이 30㎝안팎의 짧은 단도와 50㎝이상의 대도가 있고 그밖에 길이 20㎝이하의 손칼인 도자가 있는데 도자의 용도는 공구로 보겠으나 호신용 무기로도 널리 쓰였다고 생각된다. 짧고 작은 도자가 일종의 무기로 쓰였다고 보게 되는 것은 백제의 고분은 물론 삼국사기의 여러 고분에서 다른 무기류와 함께 드러나고 그 수량이 또한 적지 않음에서 이다. 그러나 그 형태가 거의 비슷하고 공격용 무기로서보다 호신용 무기로 주로 쓰였다고 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특색을 지닌 장식된 도자만을 관찰의 대상으로 했다. 그리고 단도, 대도에는 칼자루의 뒤 끝에 목두가 둥근 고리로 되어있는 환두단도, 환두대도가 있다.

다. 신라

신라의 무기 중 공격용 무기에는 원거리 무기, 근거리 무기, 공성, 수성 등 무기가 있다. 그중에서도 공성 / 수성 등 무기는 실물이 알려진 것은 없으나 「삼국유사」의 단편적 기록에 의하여 당시 공성, 수성 등 전투에 있어 어떤 무기가 쓰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1) 원거리 무기

신라의 원거리 무기에는 쏘는 무기인 활, 화살 등이 있는데, 화살촉을 제외하고는 온전한 것이 없어 활, 화살 등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가) 활

신라의 활의 온전한 유품과 기록은 없으나 그 생김새를 짐작케하는 유물이 있다.

신라의 활은 만종이었다. 경주시에서 발견된 수렁문전에 돋쳐있는 신라기마무사상에서도 실감나게 엿볼 수 있다. 이 수렵 문전에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산토끼로 보이는 한 마리의 들짐승과 한 마리의 사슴을 향해, 쏜살같이 달리는 말 위에서 방금 화살을 쏘려는, 신라기마 무사의 사냥하는 모습을 탁월한 솜씨로 사실적으로 나타낸 그림이 있는 기마 무사가 당기고 있는 활은 굽고 짧은 활인 만종이다.

(나) 화살

화살은 화살대, 깃화살촉 등으로 이루어졌다.

신라의 화살에 있어 쇠화살촉의 유물은 많다. 그 형태?크기 등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으나 화살대, 깃 등은 유기질의 것이어서 썩어 없어져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다만 쇠화살촉의 뿌리에 꽂혀있는 전편으로 미루어 화살대로서 대나무를 사용하였음을 짐작케 할 뿐이고 깃의 유물은 없어 어떤 날 짐승의 털인지 알 수 없다.

(2) 근거리 무기

신라의 근거리 무기에는 베는 무기, 찌르는 무기, 걸어 당기는 무기, 내려치는 무기 등이 있다.

(가) 검

신라의 검으로서 알려진 것은 긴 대검과 짧은 단검 각각 1자루가 있다.

1) 단검

화려한 장식으로 되어있으며 검의 길이는 36㎝로 되어 있다.

2) 대검

대검 1자루는 경주시 월성로가 지구 13호 분에서 드러났다.

이 대검은 검몸에 등날이 없고 단면이 볼록렌즈형이며 손잡이에는 목재와 사슴 뿔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검 코 부분에는 너비 1.3㎝정도의 금속판을 감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길이는 78.5㎝, 너비는 4.5㎝이다.

(나) 도

신라의 도에는 손 칼인 도자, 짧은 칼은 단도, 긴 칼인 대도 등이 있고 대도에는 장식성을 띤 여러 가지 형식의 환두대도가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신라의 칼 중 베는 무기로서 뛰어난 기능을 지니고 있는 대도만 살펴보고자 한다.

1) 대도

대도의 크기에는 길이 78㎝의 것, 길이 83.5㎝, 너비 4㎝의 것, 길이 86㎝, 너비 3.3㎝의 것, 길이 101.3㎝, 너비 3.6㎝의 것 등이 있다.

라. 가야

가야는 서기 562년 대가야국의 멸망과 더불어 신라에 의하여 정복 되었다. 그리고 멸망할 때까지 고구려, 백제, 신라 등과 같은 통일된 고대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일종의 연맹체를 구성하고 있으나 오늘날 가야의 고분에서 드러나는 각종 무기를 살펴보면 다른 세 나라, 곧 고구려?백제?신라 등의 무기와 비교하여 조금도 뒤지지 않은 우수한 무기를 제작?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가야의 무기에도 다른 나라들과 같이 공격용 무기에는 원거리 무기와 근거리 무기가 있으나 공성, 수성 무기에 관한 자료로 알려져 있지 않다.

(1) 원거리 무기

가야의 원거리 무기에는 쏘는 무기인 활, 화살 등이 있는데 화살촉을 제외하고는 온전한 것이 없어 활, 화살 등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가) 활

가야 활의 온전한 유품과 기록은 없으나 그 생김새를 짐작케 하는 유물이 있는데 그 단면은 (장경 2.73㎝, 단경 1.82㎝)속이 비어있고 길이는 약36.4㎝이다. 가야의 활에는 만중?직궁 등이 있었고 또, 활 채에 철을 올리게도 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나) 화살대

가야의 화살대는 온전하게 남아있는 실물이 없어 재질?길이?굵기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양산 부부 총에서 드러난 철촉에 화살대의 일부가 붙어 있는데 대나무에 칠을 올린 것으로서 지름이 0.3㎝이다. 이로 미루어 가야에서는 옻칠한 대나무 화살대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겠다.

(다) 철촉

가야의 쇠화살촉은 가야 고분에서 드러난 무기류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그 형태도 다양하다.

(2) 근거리 무기

가야의 근거리 무기에는 베는 무기, 찌르는 무기, 걸어 당기는 무기, 내려치는 무기 등이 있다.

(가) 검

가야의 검에는 길이 30㎝안팎의 단검과 50㎝이상 길이의 대검이 있다. 그리고 단검, 대검 할 것 없이 검신의 단면을 볼록 렌즈형이 아니며, 장방형을 이루었다. 크기는 길이 78㎝, 검신 너비 4㎝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야 철검 중 환두대검이다.

(나) 도

외날칼인 도 중에서 일상생활에 자주 쓰이는 길이 10㎝안팎의 도자와 길이 30㎝정도의 단도를 제외한다면 알려진 가야도의 유품은 거의 모두가 길이 60㎝ 이상의 대도이다. 그리고 대도에는 병도가 둥근 고리 형태를 이룬 환두대도가 있다.

1) 대도

대도는 베는데 주로 쓰이나 가야의 대도는 거의 모두가 도신이 곧은 직도로서 검과 같이 찌르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날부를 외단면은 일반적으로 2등변 3각형이나 날 끝 부분의 형태는 두 종류로 가를 수 있겠다.

마. 공성, 수성 무기

삼국시대의 전쟁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공성전과 수성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성전과 수성전이 많았으리라고 생각되게 하는 것은 삼국시대에 성곽을 많이 축조한 사실을 미루어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곧, 지금까지 남아있는 성곽들과 함께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의 성은 176개, 백제의 성은65개, 가야와 신라의 성을 합쳐서 109개가 된다. 광개토왕릉비의 비문에 나오는 성의 이름을 보면 「삼국사기」의 기록보다 좀 더 많았으리라고 생각 된다.

이 때, 전투에 쓰인 무기를 유물로서의 전혀 남아있지 않으므로 단편적인 기록을 통하여 알아 볼 수 밖에 없겠다.


1) 국방조사연구소, 한국무기 발달사. 1994. P.9.

2) 국방조사연구소, 한국무기 발달사, p.26.

3) 국방조사 연구소, 한국무기 발달사. p.34.

4) 「무기」(하출방신사. 동경, 1966)p.251.

5) 「삼국사기」「고구려본기 제5」미천 왕31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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