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병전사

2-3 고려시대의 무기

103ROTC #20 LTC / On Artillery 2007. 7. 18. 09:32
 

제 3 절  고려시대의 무기


1. 고려의 국방과 무기제조

가. 고려 국방과 무기

고려시대 무기생산과 개발은 전반적으로 보아, 국가 전략면에서 당시의 상태에 대한 소극적인 방어전략으로 일관하였고1), 전쟁수행 후 결과론적으로는 몽고와의 6차에 걸친 장기전쟁 (1231~1259)에서 패한 후 커다란 장애를 받게 되었다. 소국의 형식으로 떨어진 고려는 당연한 결과로서 준비를 강화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2).


2. 고려의 무기제조

전반적으로 고려시대의 무기는 현존하는 자료에 특별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전대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기록에 언급되는 무기 제작은 다음과 같다.

덕종원전(1032) 3월 상금 봉어 박원조의 주청에 의해 혁차, 전담석포 등을 제작하였고,

◦ 정종 6년(1040) 10월 서북 병마도 감사가 된 박원조가 질 구궁뇌를 제작하여 양계지고에 배치하였다.

◦ 묘청의 난(1135)때 조언의 계책으로 포기(袍機)가 제조되어 많은 효과를 거두었다.

고려의 무기는 삼국시대이후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재래식 무기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종류면에서는 인접한 국가인 중국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3. 화약무기 등장이전의 일반 무기

가. 무기의 종류

고대의 무기류는 여러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

장병기와 단병기가 개인간의 단거리 격투용 무기라고 한다면 궁과 뇌는 원거리 살상용이다.

전투시 상대를 살상하는 무기류를 공격용 무기라고 한다면, 상대로부터의 자신을 보호하는 갑옷이나 방패류 등을 방호용 무기라고 한다.

고려시대 말기 최무선에 의해 화약이 등장되었고, 또한 이미 중국에서는 10세기 초에 화약을 군사용으로 사용한 점을 생각한다면 화약무기와 재래무기라는 새로운 무기구분도 있게 된다.


나. 무기별 발달, 변천과 분석

(1) 공격무기

(가) 도 검류

1) 검

고려시대의 검으로서 현존하는 것은 없으나, 후기 시대인 조선시대의 검의 형태를 보아 대체로 단검형식을 갖춘 형태의 검으로 추정된다. 특이한 점은 검이 누요 전투무기로서의 역할을 떠난 후 다시 말해서 장식용이나 무위용으로 사용되면서 중국 쪽과는 조금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 쪽이 보석류를 많이 활용하여 옥구검 등의 검이나 요란한 상감을 이용한 반면, 우리 라의 검은 주술적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켜 십이지중무의 상징인 호랑이를 뜻하는 인검류와 인명을 좌지우지하는 북두칠성 신을 뜻하는 칠성검 등이 제작되었다.

고려시대 주술용으로 사용된 예로는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2) 도

도는 근접전을 치를 때 비교적 영활 하게 다룰 수 있는 무기였던 관계로 근대 화약 병기가 출현한 이후에도 여전히 쓰임으로써 활과 더불어 가장 수명이 긴 재래식 무기 중의 하나이다.

도가 검보다 견고성과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도는 한쪽 면을 두껍게 하고 한쪽 면에만 날을 세우는 관계로 그 견고성은 훨씬 초과하였다.

“검을 왼쪽에 차고, 도를 오른쪽에 차니, 검은 청룡이요, 도는 백호라”3)

3) 도끼

도끼는 도검류나 과모류에 비해서는 효능이 낮았지만, 철기시대로 접어들면서 무겁고도 예리한 무기로 다시 집중을 받기 시작하여, 주요 전투 무기의 하나가 되었으며, 전투 외에 권위의 상징물로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4) 철봉

고려시대의 곤봉류 무기는 개인의 주요 장비 무기라기보다는 위급시에 자주 이용된 것처럼 보인다.

(나) 창류

1) 과

과는 고려시대의 대기1병 전술에 상당히 유용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고려시대 후기까지 주요 국사 장비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왜구가 창궐하였던 공민왕대에 모든 사람에게 궁1, 시50, 검1, 과1을 갖추게 하고 왕이 직접 사열한 사실로서 입증했다.

고려시대의 과로서 현존하는 유물은 없으나, 중국과의 발달과정과 중국과 고려의 무기 상호교류현상을 참조컨대, 고려의 과에는 앞에서 보인 초기와의 모습에 호가 발달된 형식을 취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2) 모

모는 앞부분이 너무 길기 때문에 후에 등장하게 되는 창에 비해 기민성이 뒤떨어져 주요장비로서의 위치를 상실하는 과정을 겪는데, 고려시대는 주요 전투 수행방식이 요새전이었기 때문에, 이 모는 다른 나라에 비해 주요무기로서 수명이 길었다.

3) 창

창은 물리적인 힘을 창대에 가하여 상대를 찔러 죽이는 무기로서, 그 형태는 모와 유사하다.

창은 날이 모에 비하여 짧아 다루기에 편리할 뿐 아니라 혼전 시에 날이 부서지는 경우가 별로 없고 모에 비해 제작이 간편하여, 대량으로 다수집단에게 분배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녀 세계각국의 주요 장병기가 되었다.


다. 투살 무기류

(가) 궁시

활은 화약무기가 발명되기 전 미사일 계통의 기본무기였으며, 그 출현시기는 석기시대이다. 곤봉이나 슬림, 그리고 투철용 창 등을 던질 때의 거리상의 유한성을 가능한 신장시키려는 노력이 창안되었다.

(나) 뇌

뇌는 한마디로 말해 ‘팔을 가진 활이다.’ 팔 위에는 뇌기가 설치되어 당기어진 시위를 이 곳에 걸고 화살을 장전하여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목표를 향해 투사 물이 나아가는 것이다.


라. 공성 무기류

(가) 충차

성의 문이나 얇은 성벽에 충격을 가해 파괴시키려는 행위는 일찍부터 존재해 왔다.

초보적인 것으로 굵은 나무를 같이 뾰족하게 만든 다음, 여러 사람이 힘차게 밀어붙인다.

(나) 운재

고려시기의 공성용 사다리는 여러 가지 형식과 명칭이 있다.


마. 기타 무기류

(가) 검차

방어용 무기라고도 할 수 있으나, 공격시 사용되었고 또한, 적진 돌진 시에도 충분히 사용될 수 있으므로 공격용 무기류이다.

“검차는 길이가 9자쯤 되는 두 개의 나무를 가지고 수레 채를 만들며, 앞 뒤에는 나무를 가로대로 축을 받게 하여 외줄의 두 바퀴를 달며, 그 위에 판자를 깐다. 그리고 두 수레 채의 중간 부분에 각각 바퀴하나씩을 달아 속에 넣어두었다가 수레를 끌고 갈 때에는 두 개의 바퀴만을 사용하고, 수레를 멈추고 있을 때에는 속에 넣어 두었던 두 바퀴를 내려 빈 바퀴를 이용하게 한다.

(나) 투석

가죽 투석기를 사용, 돌을 멀리 날려 목표물을 맞추는 방식은 동서양 공히 석기시대로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작은 쇠알’ 이다. 돌을 손으로 던지면 힘이 약하여 멀리 나가지 못하나 대나무를 이용하여 던져야 힘이 강하고 맹렬하게 맞힐 수 있다. 성곽 전을 주로 수행한 고려 시대로서는 상당한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2) 방어무기

(가) 방패류

1) 보병용 방패

보병용 방패는 장방형을 이루어 좁고 긴 모양이다. 개인의 실체에 따라 크기가 다를 수 있으며, 특이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것도 있으나 대체로 실체의 3분의 2를 넘지않는 길이를 가진다. 나무의 둥근 구조를 활용하여 볼록렌즈식의 형태를 취한다.

2) 기병용 방패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방패의 중앙부분이 튀어 나와있다. 방패 속에 두 개의 끈을 날아 두고, 전투시 이 줄을 사용하여 왼쪽 팔 상반부에 묶어 놓는다.

(가) 수성 무기류

포차의 구조는 목재로 올려 만든 부분에 횡으로 하나의 나무를 걸치고 긴 봉을 중간에 놓는다. 긴 봉 한쪽 끝에는 가죽주머니를 만들어 이 곳에 돌 등의 무거운 물체를 올려놓는다. 긴 봉의 다른 한 쪽 끝에는 수십 가닥에서 백 여 가닥의 줄을 매달아 놓고 이 줄을 힘껏 당기면, 가죽 주머니 쪽의 무거운 돌이 날아가는 것이다. 발사 물은 무거운 돌 하나로 한정되지 않는다.

이 장치에 바퀴를 달아 이동에 편리하게 함으로써 포차라는 명칭이 부여된 것이며, 물론 바퀴없이도 사용할 수도 있다.

(3) 기타 무기류

(가) 원진용 수레

전투는 예측불허 한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되었기에 수레를 이용한 임시 급조식 진리인 원진(圓陣)은 동서양 공히 출현하였다.

(나) 장애물

고려시대 장애물은 철질려로서 이는 밧줄을 이용하여 묶어, 개인이 휴대하였고 녹각도 이동이 가능하며 양자 공히 인마(人馬)의 통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4. 화약무기의 등장

고려 우왕 3년(1377)에 최무선의 노력으로 우리나라가 염초를 자체 생산 흑색 화약을 제조했다.

중국에서 흑색화약이 발명된 시기에 비해 약 400년이 뒤쳐졌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여타민족에 비해 적어도 160년 이상 앞선 것으로서, 왜인이 화약병기 기술을 습득한 조선중 종말까지 동양권에서 무기체계상 화약을 보유하였다는 측면에서 중국 다음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가. 화약무기의 종류

고려 말 최무선이 제작한 각종 화기들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 발사기 : 대장군, 이장군, 삼장군, 육화 석표, 화표, 신포, 화동, 총통

● 발사물 : 철령전, 피령전, 철탄자

● 폭탄   : 질려포

● 로켓형 화기 및 기타 : 주화, 오룡전, 화전, 독천화, 유화, 천산, 육화


나. 화전과 최무선

화약을 이용하여 제작한 화전으로 믿어지는 기록 중 가장 빠른 것은 고려사 공민왕 21년(1372) 10월 기사와 다음해인 공민왕 22년(1373) 10월의 화전 발사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1) 고려사 권25 세가 25 원4년 4월 신


2) 「고려사」 世家권28 忠烈王1


3) 「고려사」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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