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병역사 13

포병역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미 210포병여단이 있는 CAMP CASEY에서 SG로 근무중이라 미포병관련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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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역사 2022.09.30

제9장 전 후 발 전

9. 전 후 발 전 (POSTWAR DEVELOPMENTS) 태평양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2발의 원자탄이 전술적으로 혁명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줄잡아 이야기한 면이 없지 않다. 직업적으로 양성된 야전군이 요새를 유럽국가의 주 방벽으로 바꾸어 놓은 18세기 이후, 군의 (군을 평가하는) 기본적인 척도가 처음으로 변화되었을 것이다. 군사 계산법으로 200년 동안 지속되어 온 소총, 기병도(刀), 그리고 평사포를 셈하는 것을 더 이상 포함하지 않았다. 대신, 권력의회 내에서 한 국가의 영향력은 메가톤만큼 무거웠다. 그러나 야전군이 실시한 요새 교체가 요새를 완전히 쓸모없게 바꾸지 않았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만큼 핵무기의 우세가 재래식 군대를 역사의 뒤편으로 넘기지는 못했다. 그..

포병역사 2007.07.10

제8장 포병 단독으로

8. 포병 단독으로 (Artillery alone) 비록 교리와 전술이 승리의 역할을 했을지라도, 1939년 폴란드전에서 독일은 기술과 수적인 우위(최신 무기로 장비된 규모가 더 큰 현대적인 군이 더 작고 성능이 떨어지는 장비로 무장된 군을 물리치는)로 문제를 쉽게 처리하여 승리를 했다. 1940년 프랑스의 패배는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방법(병력, 사단, 전차, 비행기 또는 평사포의 수)으로 군사력을 계산하면, 상대방과 거의 비슷했다. 독일 승리의 원동력은 그들 부대 규모나 또는 현대화되지 않은 부대를 운용하는 방법에 있었다. 1941년 여름과 가을, 소련에 대한 독일의 대승리에 대해서도 똑 같이 말할 수 있다. 이 승리는 완결되지는 않았지만, 독일군에게는 서부 동맹군에 대한 6주간의 ..

포병역사 2007.07.10

제7장 새로운 전쟁의 시작

7. 새로운 전쟁의 시작 (From one War to Another) 제1차 세계대전의 생존자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주장 중의 하나는 중포병(heavy artillery)이 전투를 지배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포병의 우세가 다음 전쟁에서도 재차 강조되어야 하는 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 되었을 때, 이 주장에 대한 교감은 무너졌다. 1918년 포병 대전투(great artillery battle)에서 미래의 본보기를 보았던 사람도 있었다. 참호전은 이례적이어서 결국 미래의 포병은 강행군을 하는 보병과 기병중대 내에서 움직이는 경평사포라고 주장하는 상반되는 견해를 가진 이들도 있었다. 여전히 중 및 경포병, 체계적인 포격, 그리고 융통성을 동일 체계에 대한 반대도 아닌 보완으로 보는 3..

포병역사 2007.07.10

제6장 포병전술의 대가

6. 포병전술의 대가 (Bruchmuller) 제1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일을 했던 수십만의 포병 장병 중에서 브루흐뮬러(Georg Bruchmuller)만이 유일하게 영원한 명성을 얻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장군들의 많은 공적은 각주로도 취급되지 못했지만, 중령으로 조기 전역한 브루흐뮬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 관한 문헌에서 영구적인 자리를 계속 유지했다. 브루흐뮬러의 일부 명성은 작가로서의 기술과 자기 발전을 선호함에 연유했지만, 대부분의 명성은 부동의 업적에 근거를 두었다. 그가 이러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포병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년 반동안 보낸 공성포병 대대장과 그 후 포병연대장 직책을 수행했던 브루흐뮬러는 동부 ..

포병역사 2007.07.10

제5장 보병과 포병의 분리

5. 보병과 포병의 분리 (THE GREAT DIVORCE) 모든 주요 교전국이 포병 창설을 크게 확대했던 참호전의 첫 2년 동안, 이러한 성장은 협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포병과 보병 간의 증가된 분리(공간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모습에서)와 일치했다. 일부 발전(전화기, 섬광신호, 전방관측자)은 이러한 추세를 완화시켰다. 대포병사격의 문제에 대한 증가된 관심도 이 분리를 증가시켰다. 참호 포병(trench artillery)으로 언급되었던 3번째 개발품은 그 당시의 “진정한” 포병이 최전방 참호로부터 행군을 용이하게 계속하는 동안에, 보병과 “수하(hip pocket)" 화력지원수단 사이에 있던 간격을 좁히는 일을 하였다. 분리 과정은 간접사격기법의 도입과 함께 전쟁 이전에 시작되었다. 전장에서 보병과 포..

포병역사 2007.07.10

제4장 포병과 보병의 역할

4. 포병과 보병의 역할 (Artillery conquers, Infantry occupies) 독일 육군이 곡사포를 조숙하게 선호하는 지혜를 유럽군에게 확산시킨 것에 추가하여, 서부전선에서 참호전의 시작은 모든 관련자에게 포병을 더 큰 전투에 적합하게 만드는 방법을 재차 생각하도록 강요했다. 혁명적인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처럼, 새로운 조건에 가장 빨리 적응했던 사람과 제도는 과거의 해법에 귀를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쓸모가 없던 수법이 프람더스(Flamders)의 진흙과 캄파뉴(Compagne)의 이회질 언덕에 고착되어 있던 군을 무겁게 압박했다. 참호전에 적용했던 자신들의 방법을 기동전을 준비하는 방법에 자주 반영했다. 포병 전술을 변경하기 위해 처음 투입된 프랑스군 장교중 한 명은 ..

포병역사 2007.07.10

제3장 곡사포의 출현

3. 곡사포의 출현 (HOWITZERS)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된 후 최초 3개월 동안,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접촉한 전장 어디에서나 이야기는 똑같았다. 프랑스 평사포는 상대방 독일 평사포보다 더 멀리, 더 빨리 그리고 더 정확하게 사격을 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프랑스가 경우에 따라 상쾌할 정도로 국지적인 승리를 했지만, 그러나 이와 같은 승리도 가장 실질적인 목적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 확장된 전투에서 독일군 포수는 충격을 최대로 줄이려는 곳에 포탄을 투발하려는 전술적인 감각을 가진 반면, 프랑스군 포수는 효과적으로 보병과 협동할 수 있는 위치에 거의 있지 못했다. 독일군은 우월한 전술 교리와 훈련을 제공받은 장점에 추가하여, 많은 곡사포 재고가 주는 주요한 기술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1..

포병역사 2007.07.10

제2장 신속한 사격으로 발전

2. 신속한 사격으로 발전 (the quick-firing revolution) 영국이 보어 전쟁의 교훈을 책으로 편찬했을지라도, 러일 전쟁(1904~1905)의 사태에 이 교훈을 보편적으로 적용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 전쟁이 아시아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의 규모나 군의 특성은 통상 유럽의 일반 전쟁에 참전했던 것과 흡사했다. 남아프리카 전투에서 진영은 통상 사단급이하 규모로 교전을 했으나, 일본과 러시아는 보어 공화국의 합동 시민집단보다 몇 배나 규모가 큰 부대를 작전지역에 유지했으며. 또한 보어 전쟁에서의 양 진영 군사 지도자들은 아마추어 수준에 쉽게 포함시킬 수 있지만, 러시아와 일본에서는 소대 또는 분대급까지 전문적인 군인들이 지휘를 했다. 비록 한국과 만주에 있던 포병 군수품 저장소(a..

포병역사 2007.07.09

제1장 과거의 그림자

1. 과거의 그림자 (The Shadow of Sedan) 유럽 포병은 1870~1871년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Franco-Prussian War)의 그림자 아래에서 20세기를 맞이하였다. 전술가들은 이 갈등의 전투에서 현대 대포의 운용에 대한 교훈을 풍부하게 얻었고, 평사포(field gun) 기술에 있어 승자가 패자를 1세대나 완전히 앞섰다는 사실 때문에 무기 제작자들은 반세기 동안 계속되었던 무기경쟁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무기 경쟁으로 인해 무기 판매상들이 부를 축적한 반면, 전술가들은 생계가 더 어렵게 되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전술적이고 함축적인 포병기술의 내용을 전술가들이 완벽하게 소화하기도 전에, 이 포병기술은 급격하게 변화되어 개화된 주변 세계에서 전투를 할지라도,..

포병역사 2007.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