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병사진

붉은 군대의 수호신 포병 제 2 편 - 자주포 1 of 2 - (소련 포병)(펌글)

포병역사 (onrt20 , 김여홍) 2007. 7. 15. 19:38

소련군은 자주포없이 2차대전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전쟁말엽 자주포세력은 소련군의 기갑의 40%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소련군이 자주포의 효율적인 운용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개발사 History of Development

 

1930년대 많은 자주포 차량에 대한 수많은 실험들이 행해졌고 설계되고 제조되었다. 하지만 이들 중 그 무엇도 채택되지는 못했다. 그중 한 가지 이유는 스탈린의 재군비정책으로 인하여 소련의 모든 중공업 산업은 전차를 생산하기에도 벅찰 지경이었으며 자주포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자주포를 간접사격용으로 운용하는 것은 쓸모없는 짓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기동가능한 자주포가 사격진지에서 명령을 기다리는 것은 자주포의 역할이 아니며 직접사격의 경우 전보다 더 가볍게 제작된 화포가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화포에 차대를 부착하는 일은 필요치 없은 일이었다.

 

 들고 뛸수도 있는(?) 이런놈이 나았다는 생각이었다. 사진은 ZIS-3

 

마지막으로 소련지휘관들은 전차가 45mm나 76.2mm의 대구경 포를 탑재함으로써 대게 자주포에 요구되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개전초기의 수업료     The Early Stages of the War : Lesson Learned

 

1941년 독일의 갑작스런 침공은 붉은군대 전차전력에 막대한 손실을 야기했다. 소련 산업은 손실분을 보충하기 위해 표준화되고 제한된 모델의 전차(T-34, KV-1, T-70)만을 대량생산해야만 했다. 이런 표준화된 전차들이 최대한 빨리 대량생산되어 손실분을 충당할때까지 새로운 설계연구는 중단되었다.

 

1942년에 이르러서야 소련의 연구자들이 숨을 쉴만한 공간이 마련되었으며 그동안의 전장에서 몇가지 교훈을 얻게되었다. 그들이 주목한 한가지는 독일의 구축전차인 돌격포(Sturmgeshutz)의 유용성 이었다.

 

 소련도 삼돌이가 필요했다

 

자신들도 이런차량이 필요하다고 본 소련군은 자주포를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하나는 T-70 경전차(SU-76)의 차대를 또 다른 하나는 T-34중전차(SU-122)의 차대를 이용해 제작하기로 한다. 생산이 이루어지자, 포탑이 없는 자주포는 전차에 비해 간단한 공정으로 더 빨리 생산할 수 있다는 이점을 보여줬다.

 

이런 디자인과 별도로, 붉은군대는 현장에서 즉석으로 Komsomolets tractor에 M1941 57mm대전차포를 거치한 ZIS-30을 제작한다. 100여대 가량이 제조되어 1941~42년 겨울 치열했던 모스크바 공방전에 투입되었다. ZIS-30은 현장에서 만든것 치고는 충분한 효율을 입증했고 자주포의 가치를 증명했다.

 

 트랙터에 57mm 대전차포를 정말(?) 거치해버린 ZIS-30

 

 

제 1세대 자주포들    The First Soviet Self-propelled Guns

  

 임시 변통형 짝퉁 SU-76i

 

두 개의 자주포 모델(Assault Gun : SU-76 and SU-122)이 1942년 동안 설계되고 실험되어 년말에 이르러 정식으로 채용되어 생산을 개시했다. SU-76는 360대가 생산되고 난 뒤에 결점이 발견되어 이의 수정을 위해 다시 공장으로 보내졌다. 이 공백기에 ZIS-3 야포는 노획한 독일군의 3호 전차의 차대에 거치되었다.(SU-76i) 이 하이브리드 자주포는 충분히 성공적이었지만 예비 부품의 부족으로 운용에 어려움이 발생했고 결정적으로 진짜 (?) SU-76(SU-76m)이 복귀함으로써 전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병원에서 갓 퇴원한 오리지날 SU-76m

 

SU-76 소련군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보이는 가장 일반적인 자주포였으며 거의 13,000여대가 생산되었다. 이 자주포는 경장갑에, 상부개방식(겨울엔 너무 추웠고, 전장 특히 시가전에선 ㅎㄷㄷ 이었다.) 전투실을 가졌지만 막강한 주먹을 가지고 있었으며 승무원들은 이 자주포를 SU에서 파생되고 암컷을 의미하는 ‘Suka'라는 애칭으로 다정하게 불렀다.

중형 자주포인 SU-122는 극단적인 비효율을 입증하며 1943년 말 SU-85에 의해 대체되기 까지 단 1,148대 만이 생산되는데 그쳤다. 거치된 122mm ML-30 M1938포의 HE탄 발사능력은 찬사를 받았지만 제한적인 대전차전 능력은 잼병임을 드러내었기 때문이었다.

 

 1943년 7월 14일 전선으로 이동하는 SU-122, 프로호로프카에서 촬영

 

또한 SU-122의 생산단가는 SU-78에 비해 너무 높았다는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SU-122는 붉은군대에게 향후 자주포 운용에 관한 매우 가치있는 교훈을 남겨주었다.

 

  T-48 GMC

 

소련군에게 또 하나의 교훈을 남겨준 차량은 렌드-리스된 미제 T-48 GMC 였다. 이 차량은 M3A1 하프트랙에 57mm 대전차포를 거치한 것으로서 러시아에서는 SU-57이라고 불렸다. 대전차 자주포로 운용된 T-48 GMC의 탑재된 대전차포는 충분히 강력했고, 차체의 기동성또한 만족할 만할 수준이었다. 1944년 2월까지 650대의 T-48 GMC가 공여되었고 수개의 자주포 여단들이 거의 SU-57로 구성되었다. 공여된 특정 장비로 이렇게 집중운용된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곰들의 대평원에 호랑이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1942년 9월 16일 소련군 최고 사령부를 경악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6호전차 티거의 등장이었다. 이 호랑이는 무게가 무려 56톤에 이르고 원거리 사격이 가능하고 강력한 88mm FLAK로 이빨과 발톱을 단 놈이었다. 1943년 1월 노획한 티거를 대상으로 76.2mm를 사격한 결과 이빨도 안 먹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85mm 대공포는 어느정도 이빨이 먹혔고 122mm A-19와 152mm ML-20 군단포는 아예 아작을 낼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소련 지휘부는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새로운 개념의 중(中), 중(重)자주포를 개발할 것을 명령했다. 이 새로 개발될 자주포는 현재와 미래에 출현할지 모르는 독일의 중(重)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강력한 포가 탑재될 것이었다.

 

 

제 2세대 자주포들    The Next Generation of the Soviet S.P.G

 

 여전히 쓸만한 놈이었지만 적들은 이미 업그레이드 컴플리트된 놈들이었다

 

1943년 붉은 군대의 기갑병들에겐 너무나 가혹했던 한해였다. 표준화된 전차들의 대량생산을 이유로 한 기술개발의 동결이 문제였다. 현재 독일의 최신전차들은 거의 모든면에서 현재의 소련전차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T-34는 지난 2년간 4호전차랑 비등한 전투를 벌일수 있었지만 지금 4호전차는 전보다 훨씬 막강해진 장포신의 7.5cm포를 탑재하고 T-34를 원거리에서 조질 수 있었다.

 

이랬던 4호전차가....

 

이렇게 변해있었다!!!

 

 개발명령이 떨어진 신형 차량들은 아직도 전장에 배달되지 않았었다. 도저히 메꿀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이 불균형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되고 있었다. 1944년 상반기에 이르러서는 양측 기갑전력의 기술적인 측면은 그 어느때보다 근접하게 되었다.

 

 대물 사냥꾼 혹은 동물원 경비라고 불렸던 SU-152

 

1943년중반, 전장에 투입된 신형 차량인 SU-152 ‘Svierboy’혹은 대물 사냥꾼 (Biggame Hunter)이라 불리며 독일군의 대형 고양이과 맹수들을 사냥 할 수 있었다. 이 자주포는 KV-1의 차체에 152mm ML-20 곡사포를 탑재했으며 704대가 생산되었지만 쿠르스크 전투에는 단 하나의 연대 (2대의 SU-152중대 x 6)만 운용가능했다. 152mm 곡사포가 거대한 철갑고폭탄(APHE)을 날리면 현존하는 그 어떤 전차라도 파괴 가능했다.

 

동물원 경비아저씨에게 걸렸던 표범의 상처 (차체 전방 둥그렇게 파인 부분)

 

이 곡사포는 느린 초속 때문에 원거리 사격시 적 전차의 장갑이 얇은 상면을 강타할 수 있었으며 (곡선을 그리는 탄도 때문에), 근거리 교전시에는 탄의 운동에너지와 화학에너지로 포탑을 날려버릴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자주포의 약점은 낮은 발사율과 부족한 포탄적재 능력이었다. (각 SU-152에 단 20발만 적재) 43년 8월 다른 신형 자주포 SU-85가 생산에 들어갔다. 이 차량은 T-34의 차대를 베이스로 하여 SU-122 중(中)자주포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SU-85에 장착되는 85mm D5 화포(T-34/85와 동형)는 SU-122의 그것보다 이중목적용으로 (대전차/인마살상용)더 효율적인 포였다.

 

독일군에 점령된 소련 도시를 해방시키는 SU-85

 

약 2,050대가 1944년 10월까지 생산되었으며, 좀 더 진화된 SU-100이 이를 대체하게 되었다. SU-100은 이차대전 중 가장 강력한 대전차포 중의 하나인 100mm D-10S을 장착하였으며 대전이 끝날때까지 1,675대가 생산되었다.

 

 원치 않은 사생아였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던 SU-122

 

소련의 신형 중전차 IS-2가 개발되자 상호 운용의 원할성을 위해 IS-2의 차대를 베이스로 한 ISU-122와 ISU-152가 개발되어 KV를 베이스로 한 SU-152를 대체하였다. 원래 개발 계획엔 152mm 장착형만 있었으나 152mm 포신의 부족으로 122mm가 추가되었다. 후에 152mm 포의 생산이 정상화 되었지만, 122mm의 유효성이 입증되어 생산라인은 계속 돌아가게 되었다. (전선에 있는 부대들은 더 뛰어난 파괴력의 152mm를 선호했음은 물론이다.)

 

 

소련 자주포 현황    Soviet Self-Propelled Gun Stats

 

구 분

소련 자주포 1세대

SU-76m

SU-122

SU-85

SU-152

중    량(t)

11.2

30.9

29.6

45.5

승  무  원

4

5

4

5

무       장

76.2mm ZIS-3

122mm M-30

85mm D-5-S8

152mm ML-20

탄약 적재량

60

40

48

20

장갑 (차체)

25mm

45mm

45mm

60-74mm

생  산  량

12,671

1,148

2,050

704

 

구       분

소련 자주포 2세대

ISU-152

ISU-122

SU-100

중    량(t)

46

46

31.6

승  무  원

5

5

4

무      장

152mm ML-20

122mm D-25

100mm D-10S

탄약 적재량

20

20

34

장갑 (차체)

90mm

90mm

75mm

생  산  량

4,075

1,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