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병사진

2차 세바스토폴 전투에 투입된 독일군 독립 포병부대(펌글)

포병역사 (onrt20 , 김여홍) 2007. 7. 15. 19:56

독일군의 제2차 세바스토폴 전투 — 철갑상어낚시(Störfang) 작전은 독-소 양측에게 숱한 전설을 남긴 전투지만 그 중에서도 일반 전사 팬들에게 강렬하게 남는 인상이라면 독일군의 공세로서는 유별나게도 대규모의 포병화력이 집중된 전투였다는 점일 것이다. 소련군이야 이후 1944-45년의 대규모 공세를 개시할 때마다 과장을 보태어 언덕 하나를 깎아버릴 만큼의 무시무시한 포병화력을 종종 과시하였다지만, 포병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 못했던 독일군에서 그러한 전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독일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히 요새화된 세바스토폴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가용한 최대한의 화력을 집중하여 최소한의 피해로 단시간 내에 작전을 종결지을 필요가 있었다. 전면적인 하계공세가 임박한 시점에서 제11군이 조속히 거추장스러운 세바스토폴을 함락시켜야만 타만 반도를 거쳐 캅카즈로의 공세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2구경 305㎜ 연장포탑을 갖춘 막심 고리끼 1, 2호 포대 — 이 명칭은 독일군이 붙인 것으로 소련측의 공식 명칭은 각각 제30, 35번 해안포대(Башенные батареи)였다 — 를 포함하여 645문의 각종 야포와 2000여 문 이상의 박격포로 무장한 세바스토폴의 방어망을 정면으로 깨기 위해 OKH는 독일육군의 포병 화력을 싹싹 긁어모아 제11군에 할당하게 되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초에 마지노선 돌파가 너무 어이없이 쉽게 이뤄지는 바람에 제대로 써먹을 일이 없었던 각종 공성포들이 총동원되어, 세바스토폴은 사실상 20세기의 대규모 공성포들의 마지막 실전현장이 되었다.

독일군은 포병부대 지휘에 있어 별도의 포병지휘부를 두고 있었는데, 흔히 사단급 작전에서는 예하 포병연대장이 Artillerieführer(Arfü)라는 이름으로 화력지원업무를 총괄하였고, 군단급 작전에서 예하의 사단포병들과 추가로 배속된 독립포병부대에 대해서는 Artillerie-Kommandeur(Arko)라는 별도의 포병지휘부가 이 업무를 맡았다. 그리고 이 세바스토폴 전투와 같이 야전군급 이상의 대규모 화력통제에는 Höhere Artillerie-Kommandeur(HArko)라는 상급포병지휘부가 별도로 배속되었다.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제11군의 주공은 세베르나야 만 북부 강력한 요새지대 공략을 맡은 제54 군단 쪽이었으므로 이 군단의 공세 지원을 위해 독일군 포병의 대부분이 동원되었으며, 이들 포병을 총괄하는 임무는 제306 상급포병지휘부(HArko 306)에 주어졌다. 이 포병지휘부 사령관은 요하네스 추커토르트(J. Zukertort) 중장1이 맡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적은 전력이 투입된 남동부지구 방어선 공략을 맡은 제30 군단과 루마니아군에는 그만큼 적은 수의 포병만이 공격을 지원했으며, 그 부대들의 지휘는 제30 군단의 Arko였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로베르트 마르티네크(R. Martinek) 중장이 맡았다.

Martinek

R. 마르티네크 중장

Zukertort

J. 추커토르트 중장

이들 크게 2개 포병지휘부 예하로 세바스토폴 공략을 위해 배속된 독일군 포병부대의 총 화력은 야포 600여 문에 방사포(네벨베르퍼)가 다연장인 점까지 고려하여 대략 1300여 개에 이르는 포열이 35㎞의 전선에 걸쳐 세바스토폴 요새를 향해 포탄과 로켓탄을 날릴 준비를 갖춘 셈이었다. 평균잡아 ㎞당 40여 문의 화력이었고, 상당수가 북쪽 공격정면에 할당되었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공격하는 독일군 측이 집결시킨 화력규모가 엄청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을 좀더 자세히 구분해보면 대략 아래와 같은 구성이었다:

  • 66개 경(輕)포대(le.Bttr.): 주로 10.5㎝ 경야전곡사포(leFH) 장비
  • 81개 중(重)포대(s.Bttr.) 및 최중(最重)포대(schwerste Bttr.): 15㎝ 중야전곡사포(sFH) 장비 포대가 주력이었고, 구경 10㎝ 이상의 장포신곡사포(Kanone) 및 구경 15㎝ 이상의 각종 곡사포, 열차포, 구포(臼砲, Mörser) 등을 장비
  • 24개 방사포대(Nebelwerfer Bttr.): 주로 15㎝ 41형 네벨베르퍼(NbW 41) 장비
  • 3개 돌격포대대(StuG.Abt.): 3호 돌격포(StuG III) 장비
  • 17개 중(重)대공포대(s.Flak-Bttr.): 88㎜ 대공포(Flak) 장비
  • 3개 포병관측대대(Beobachtungs-Abteilung)
  • 루마니아군 소속으로 22개 경포대, 12개 중포대

이하에서는 이들 중에서 leFH 18이나 sFH 18을 장비한 보통의 사단포병들 이외에 HArko 306 직속으로 추가 배속된 독립포병부대들과 그 장비들에 대해 설명하기로 한다. (방사포부대, 돌격포부대, 대공포부대 등은 일단 제외하였다.)

II./Artl.Rgt.54 (15㎝ sFH 18 장비)

제54 포병연대 2대대는 너무나도 유명한 독일육군의 주력 중포이던 15㎝ 구경의 18형 중야전곡사포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이 야포는 포 중량 5412㎏, 포열길이 4.44m, 포구초속 620㎧으로 43.5㎏ 고폭탄을 최대 13,325m까지 쏘아보낼 수 있었으나 다른 열강들의 동급 화포에 비해서 그리 인상적인 성능은 아니었다. 이 대대는 당시 3개 포대에 10문을 보유한 채로 세바스토폴 전투에 투입되었다.

  • 1개 (차량화) 본부중대
  • 3개 (차량화) 포대: 각 15㎝ sFH 18 4문(1개 포대는 2문 결여)
  • 1개 (차량화) 탄약수송대: 수송능력 39t
15cm sFH 18

I./Artl.Rgt.77 (15㎝ sFH 37(t) 장비)

제77 포병연대 1대대는 체코 병합 당시에 편입된 체코 스코다 사 제품이던 15㎝ 구경의 37형 중야전곡사포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이 부대는 처음에는 독일제 중야전곡사포 15㎝ sFH 18을 운용하였으나 점차 일선 사단포병에서 이 포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노획장비 및 구식장비로 교체되어갔다. 이 스코다 사의 15㎝ sFH 37(t)는 병합 이전 체코군의 신예 주력야포 중의 하나였으며 포 중량 5230㎏, 포열길이 3.6m, 포구초속 580㎧으로 42㎏ 고폭탄을 최대 15,750m까지 쏘아보낼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1939년 기준으로 독일군은 1118문을 보유하여 독일제 18형 중야전곡사포에 버금갈 정도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후 점차적으로 독일제 포들의 배치가 늘어나면서 교체되고 있던 차였다. 이 대대는 2개 포대 8문을 보유한 채로 세바스토폴 전투에 투입되었다.

  • 1개 (차량화) 본부중대
  • 2개 (차량화) 포대: 각 15㎝ sFH 37(t) 4문, 경기관총 2정
  • 1개 경탄약수송대: 수송능력 20t
15cm sFH 37(t)

III./Artl.Rgt.111 (15㎝ sFH 18 장비)

제111 포병연대 3대대는 앞서 소개한 15㎝ 구경의 18형 중야전곡사포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이 부대 또한 앞서 소개한 제77 포병연대 1대대와 마찬가지로 이후 18형 중야전곡사포를 일선 사단포병들로 넘기고 구식장비로 교체될 예정이었다. 대대는 당시 2개 포대 7문을 보유한 채로 세바스토폴 전투에 투입되었다.

  • 1개 (차량화) 본부중대
  • 2개 (차량화) 포대: 각 15㎝ sFH 18 4문(이중 1문 결여), 경기관총 2정
  • 1개 경탄약수송대: 수송능력 24t

Artl.Bttr.458 (42㎝ Haubitze(t) 장비)

제458 포병포대는 대단히 희귀한 화포 중의 하나인 체코 스코다제 42㎝ 곡사포를 장비하고 있었다. 독일군의 유명한 42㎝ 감마(Gamma) 구포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 부대만이 독일군 전군에서 유일하게 이 포 1문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세바스토폴 전투에서도 나름의 활약을 하였다. 포 중량은 105톤에 이르렀고 포열길이 6.29m에 최대사정은 14,100m였다. [단, 이 부대가 포대였는지 대대였는지 문헌마다 다소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부 문헌에서는 Haub.Abt.458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신빙성이 떨어져서 일단은 포대 쪽이라고 작성해놓았다.]

42cm Haub(t)

Artl.Bttr.459 (42㎝ Gamma-Mörser 장비)

제459 포병포대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명성을 떨쳤던 감마(Gamma) 구포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독일은 이 포를 배치할 생각이 없었으나 프랑스와의 전쟁위기가 고조되면서 1차 세계대전 때 이후 퇴역한 채 고이 보관되어 있던 1문을 1939년 12월 일부 개수하여 전선에 배치한다. 그래서 이 부대가 독일군 전군에서 이 포 1문을 보유한 유일한 부대였다. 포 중량은 140톤에 이르렀고 포열길이 6.72m에, 포구초속 220㎧으로 1톤 짜리 포탄을 최대사정 14,200m로 쏘아보낼 수 있었다.

  • 1개 (차량화) 중대본부
  • 1개 (차량화) 포대: 42㎝ Gamma-Mörser 1문, 경기관총 2정
42cm Mrs

Artl.Bttr.502 (17㎝ K 18 i. ML. 장비)

제502 포병포대는 당시로서는 최신예 야포 중의 하나인 17㎝ 구경의 18형 장포신곡사포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이 포는 독일군 중포병대의 새로운 장비요구에 따라 대전 이전부터 개발에 착수, 21㎝ 구경의 18형 구포와 병행하여 개발되어 1941년부터 생산에 들어가 1942년 중반에는 아직 거의 배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포의 제식명 뒤에 붙은 i. ML.은 "im Mörserlafette"의 약자로, 21㎝ 18형 구포와 동형의 포가에 올려놓았다는 뜻이다. 이 포가는 단거리 이동 시에는 바퀴를 붙인 채로 이동-사격이 가능했고, 장거리 이동 시에는 포가와 포열부를 완전히 분리하여 별도로 차량으로 운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포는 같은 18형 명칭을 가진 10㎝, 15㎝ 장포신곡사포와 구분하기 위해 흔히 "Bleiglanz"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포 중량은 23,375㎏ (전투중량 17,510㎏), 포열길이 8.53m이었으며, 포구초속 925㎧으로 68㎏ 짜리 포탄을 최대사정 29,600m까지 쏘아보낼 수 있었다. 이 포대는 당시 3문을 장비하고 있었다. [단, 이 포대의 단대호가 정확한지 불분명하며, 심지어 실존여부도 다양한 문헌에서 검증되지는 못했다. 이 점은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17cm K 18 i. ML.

schw.Artl.Abt.624 (21㎝ Mörser, 30.5㎝ Mörser 장비)

제624 중포병대대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상당히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부대로서, 독일의 대표적인 구형 중포인 21㎝와 30.5㎝ 구포를 장비하고 있었다. 이 부대가 운용하고 있던 21㎝ 구포는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에 배치된 것이었고, 1934-35년 중에 보유물량의 개수가 진행되어 2차 세계대전 개전 시에는 28문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구형 21㎝ 구포는 흔히 "lange Mörser"로 불리웠는데 특성상 사정거리가 짧은 등의 문제가 많아서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마지막으로 대거 사용된 이후 점차 신형의 21㎝ 18형 구포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포 중량은 7550㎏이었고, 포구초속 394㎧으로 120㎏ 짜리 포탄을 최대사정 10,200m까지 쏘아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30.5㎝ 구포 역시 1차 세계대전 때 쓰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스코다 사 제품으로 역시 일부 개수를 거쳐 실전에 투입된 것이었다. 이 포는 구경과 화력에 비해서는 이동이 용이한 편이어서 1차 세계대전 초기부터 마땅히 실전배치된 중포 전력이 부족하던 독일군이 대거 도입하여 사용한 전력이 있다. 이 대대는 결국 도합 3개 포대에 21㎝ 구포 9문, 30.5㎝ 6문을 장비하고 있었다.

  • 1개 (차량화) 본부중대
  • 3개 (차량화) 포대: 각 30.5㎝ Mrs 2문, 21㎝ Mrs 3문, 경기관총 2정
  • 3개 (차량화) 경탄약수송대: 수송능력 34t
  • 제624 (차량화) 경탄약수송대: 수송능력 48t
21cm Mrs.
30.5cm Mrs.

Artl.Bttr.628 (60㎝ Mörser "Karl" 장비)

이 제628 포병포대는 80㎝ 열차포 "Dora"만큼이나 유명한 60㎝ 자주구포 "Karl"을 운용하던 유명한 부대였다. 이 포는 자주포로는 사상 최대 규모라는 명성답게 무려 97톤의 무게에 포구초속 220㎧로 2180㎏ 짜리 포탄을 최대사정 4200m로 쏘아 보낼 수 있었다. 2톤이 넘는 포탄의 파괴력은 상당했으나 사정거리가 짧다는 문제 때문에 전투가 진척되어 주도권을 잡은 이후에 근접시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었다. 세바스토폴 전투에서는 "Odin"과 "Thor"라는 별명을 가진 2문이 주로 활약했다.

60cm Mrs. "Karl"

schw.Artl.Abt.641 (35.5㎝ Haub.-Mörser 1, 30.5㎝ Mrs. 장비)

제641 중포병대대는 30.5㎝ 구포 이외에도 특이하게 35.5㎝ 1형 곡사구포를 1문 운용하고 있었다. 포 중량 123톤, 포열길이 10.27m에 포구초속 570㎧으로 575㎏짜리 포탄을 최대사정 20,850m까지 쏘아보낼 수 있던 이 강력한 포를 1문 장비한 유일한 부대이기도 했다.

  • 1개 (차량화) 본부중대
  • 2개 (차량화) 포대: 각 30.5㎝ Mrs 2문, 경기관총 2정
  • 1개 (차량화) 포대: 35.5㎝ Haub.-Mrs. 1 1문, 경기관총 2정
  • 2개 (차량화) 경탄약수송대: 수송능력 34t
  • 1개 (차량화) 경탄약수송대: 수송능력 20t

이 포의 실사장면은 최근에 윤시원 님의 블로그에 링크된 유튜브 동영상에서 확인했다. 이 동영상은 독일군이 예브파토리야(Евпатория) 상륙을 시도한 소련군을 격퇴시킨 장면부터, 세바스토폴 외곽에서 포위망을 압박해가는 장면을 담고 있다. 여기서 약 2분~1분 30초 남은 부분에 나오는 거포가 바로 35.5㎝ 1형 곡사구포이다.

Artl.Abt.(E)672 (80㎝ K(E) "Dora" 장비)

제672 철도포병대대는 우리에게 "Dora"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무려 80㎝ 구경의 사상 최대-최강 열차포를 운용한 부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거대한 규모만큼 수송-운용에 필요한 막대한 인원, 장비와 성능에 대해서는 대단히 이야기할 거리가 많으므로 기회가 되는대로 별도의 글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80cm K(E) "Dora"

Eisb.Artl.Bttr.688 (28㎝ K(E) "lange Bruno" 장비)

제688 철도포병포대는 28㎝ 열차포 "Bruno" 시리즈 중의 하나인 "lange Bruno" 열차포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이 시리즈는 크게 "kurze Bruno", "lange Bruno", "schwere Bruno", "neue Bruno"의 4가지 변종이 있는데, 구경은 모두 28.3㎝로 동일하지만 포열 길이와 사용탄약이 조금씩 달랐다. "lange Bruno"의 경우 45구경 28.3㎝ 함재포를 탑재한 경우로 포구초속 875㎧로 284㎏ 짜리 포탄을 최대사정 36,100m까지 쏘아 보낼 수 있었다. 총 3문이 생산되었는데 이들 3문 모두를 이 포대가 장비하고 있었다. 참고로 아래 사진은 "lange Bruno"보다 포신이 좀 더 짧은 "kurze Bruno"의 사진이다.

28cm K(E) "kurze Bruno"

schw.Artl.Abt.737 (15㎝ sFH 37(t) 장비)

제737 중포병대대 또한 앞서 소개한 체코 스코다제 15㎝ 37형 중곡사포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대대 전체로는 2개 포대에 각 4문씩 총 8문을 장비하고 있었다. [일부 문헌에서는 단대호가 734로 나와있다.]

Artl.Bttr.741, 742, 743, 744 (28㎝ Haubitze 장비)

제741-744 포병포대는 모두 구형의 28㎝ 곡사포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이 28㎝ 곡사포는 독일군이 1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야포로서 포구초속 376㎧로 340㎏ 짜리 포탄을 최대사정 11,000m까지 쏘아 보낼 수 있는 포였다. 무거운 포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사정이 짧고 구식이라서 역시 다른 전장에서는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활약했다. 제741-743 포병포대는 각 4문씩의 28㎝ 곡사포를 장비했으며, 제744 포병포대는 일반 28㎝ 곡사포가 아닌 28㎝ 해안곡사포(Küsten-Haubitze) 2문을 장비했다. [단, 일부 문헌에서는 이 해안곡사포 장비 포대 단대호가 744가 아닌 724로 나온다.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추후에 확인해서 수정하도록 하겠다.]

I./Artl.Rgt.814 (24㎝ Haubitze 39 장비)

제814 포병연대 1대대는 24㎝ 구경의 39형 곡사포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부대 전체로는 3개 포대에 5문의 포를 장비하고 있었다.

  • 1개 (차량화) 본부중대
  • 2개 (차량화) 포대: 각 24㎝ Haub. 39 2문, 경기관총 2정
  • 1개 포대: 24㎝ Haub. 39 1문, 경기관총 2정
24cm Hb 39

II./Artl.Rgt.815 (30.5㎝ Mörser 장비)

제815 포병연대 2대대는 앞서도 소개한 30.5㎝ 구포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세바스토폴 전투에서는 대대 전체로 5문을 장비하고 있었다. [이 부대 또한 존재여부에 대해 문헌들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추후에 확인-보충하도록 하겠다.]

schw.Artl.Abt.815 (30.5㎝ Mörser 장비)

제815 중포병대대 또한 30.5㎝ 구포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세바스토폴 전투에서는 대대 전체로 6문을 장비하고 있었다.

  • 1개 (차량화) 본부중대
  • 3개 (차량화) 포대: 각 30.5㎝ Mrs 2문, 경기관총 2정
  • 1개 (차량화) 경탄약수송대: 수송능력 48t

II./Artl.Rgt.818 (10㎝ K 18 장비)

제818 포병연대 2대대는 10㎝ 구경의 18형 장포신곡사포을 운용하는 부대였다. 이 장포신곡사포는 독일군의 주요 중포 중의 하나였으며, 기갑사단 경우에는 사단포병급에서도 1개 포대를 장비하고 있었다. 생김새는 사진에서 보듯이 15㎝ 18형 중곡사포와 거의 유사하다. 그것은 실상 이 두 포가 동일한 포가를 사용하기 때문이며, 10㎝ K 18의 포열이 5.46m로 더 길다는 점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포 중량 또한 전투중량 5642㎏으로 15㎝ 18형 중곡사포보다 다소 무겁다. 포구초속 835㎧으로 15㎏ 짜리 포탄을 최대사정 19,015m까지 쏘아 보낼 수 있었다. 세바스토폴 전투 당시에 대대 전체로 10문을 장비하고 있었다.

  • 1개 (차량화) 본부중대
  • 3개 (차량화) 포대: 각 10㎝ K 18 4문, 경기관총 2정
  • 1개 (차량화) 탄약수송대: 수송능력 20t

schw.Artl.Abt.833 (21㎝ Mörser 장비)

제833 중포병대대 또한 21㎝ 구경의 "lange Mörser"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세바스토폴 전투 당시에는 대대 전체로 2개 포대 8문을 장비하고 있었다. [이 부대는 원래 21㎝ 구포 이외에도 60㎝ 구포를 장비했던 부대인데, 아마도 세바스토폴 전투 투입 이전에 60㎝ 구포를 장비한 포대가 제628 포대로 독립되어 투입된 것 같다.]

Kanonen-Bttr.917 (19.4㎝ K 485(f) 장비)

제917 포대는 특이하게도 프랑스제 19.4㎝ 구경의 "자주"곡사포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이 포는 2차 세계대전 전에 각국의 자주포 개발사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는 포인데 생 샤몽 사에서 개발한 궤도식 자주차대에 얹혀져 있었다. 이 자주포가 독특한 점은 포를 얹은 차대에는 모터만 얹혀 있고, 함께 따라다니는 차량에서 발전을 해서 케이블로 전력을 공급해줘야 굴러간다는 것이었다. 역시 이 부대가 이 자주곡사포를 장비한 유일한 부대였고 세바스토폴 전투에는 3문이 투입되었다.

19.4cm K 485(f)
Notes.
  1. 요하네스 추커토르트 중장은 사실 유태인의 피가 반이 섞여있었다. (추커토르트란 성이 폴란드 지역의 유태인들이 쓰던 성이었고, 아버지가 귀화한 유태인이었다.) 유태인 탄압정책에도 불구하고 독일군 내에서는 드물게 이러한 절반의 유태인(half-Jew)으로서 장군의 반열에 오른 사례들이 있다. 당시 제11군 사령관 만슈타인 상급대장의 본가(레핀스키 가문) 또한 유태계 뿌리를 둔 가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기묘한 우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