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5. 대학시절1-2

포병역사 (onrt20 , 김여홍) 2007. 7. 10. 14:41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에 서울로 와서는 삼성동의 큰 형님집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간단히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
앞에서 4남 3녀 중에서 막내인 나에겐 어렵게 사는 형제자매들이 많았습니다.
큰형은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를 졸업하고서도 그 당시에는 교직을 잡는데도 뒷돈이 필요한 모양인지.. 제대로 취업도 못하고 부산서 재건고등학교라는 이상한 학교에서 잠시 교직을 하다가 동양화학에 취직했고,
 
첫째 누나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하여 여러 면에서 능력이 부족한 분하고 결혼했고,
 
둘째 형은 한참 때는 권투와 태권도를 하여 한량으로 생활했고 군생활은 HID라는 북파공작원으로 근무를 한 후에 운전을 하고 있었다.
 
둘째 누나는 말로만 사업가 하고 속아서 결혼하여 참으로 고생을 많이 했던 시절이었고,
 
셋째 누나는 우리 집 옆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젊은 총각과 결혼하여 포항에서 신혼생활을 하다가 여러 면에서 적응을 못하여 정신착란증으로 이혼을 한 후 정신병원에 치료 중이었고,
 
바로 위의 형은 한참 중동 건설붐을 타고 해외에 나가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 유산중 팔았던 토지의 제 몫을 큰 형님이 관리하고 있어서, 1학년 등록금과 수업료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2학년초에 모친이 돌아가신 다음부터 손을 벌리기가 힘들어서 학자금 대출과 근로장학생 등을 하면서 신문배달소에서 숙식하며 숙식과 용돈을 마련하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2학년말에 ROTC를 지원하면서 복무연장(장학생)을 신청하여 국방부에서 주는 돈으로 수업료를 해결했고, 과외 등을 통하여 생활비를 벌면서 어렵게 생활했지만.. 그래도 자신만만하게 대학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미팅 후 에프터를 신청할 수 있는 커피값만 있었어도 많은 여학생을 울렸을 것 같습니다. 의외로 인기가 많았거던요..
 
첫술은 대학입학 후 고교동문 회식에서 14년 선배 앞에서 배운 것이라 지금도 술은 젊잖게 마시고 담배는 우연찮게 대학교 4학년 때 배웠는데.. 빠꼼 담배였지만, 그래도 폼은 멋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3, 4학년때는 후보생 시절이라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늠름하게 생활을 했고 그 당시 이런저런 좋은 추억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미팅을 하면, 제 자신이 내세울 게 없어서 흔히들 말하는 호구조사도 못했고, 상대의 전화번호도 묻지 않아서 상대편은 제가 맘에 들어하지 않아서 자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시절은 어떻게 보면 혼돈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대학생, 신문배달원, 입주과외교사, ROTC 후보생, CCC맨, 그리고 풍운아 등등..
 
지금부터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었던 이성 관련 내용을 적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교회친구와는 1학년 1학기가 채 지나가기 전에 상황종료되었습니다. 부산서 대학 다니던 그 친구와 친구관계를 유지한다고 사실 때문에, 저는 미팅이란 것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지냈는데, 어느 축제하던 날 만났던 그 여자아이가 다니던 교회 남자친구의 한마디  " 자신이 그 친구와 먼저 알고 지냈으니 그만 연락하라"라는 말은 순진하게 듣고서.. 내가 뒷전으로 물려났습니다. 아마 그 너무 하고 나를 비교할 때 그 넘은 서울법대생이란 것에 주눅이 들었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넘이 그녀와 결혼할 것도 아닌데..
 
그러다가 방학 때 부산을 내려갔는데, 중학교 때 같은 교회를 다녔던 그 아이를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창밖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주변에 많은 남학생이 있었고, 그 여자아이가 노란색으로 염색한 파마머리를 한 것을 보고 제가 이상하게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방학 때 한번 만나려고 했던 생각을 그 짧은 순간에 접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3학년 때 방학이 되어 부산 친구들에게 중학교 동창이면서 대학시험을 본 후 우연히 차에서 만났던 그 아이의 소식을 듣고서 만난 후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내가 소위를 달고 광주 상무대 교육을 수료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그 아이하고는 부산과 서울을 오가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사귀면서 마지막 단계를 빼고는 다해본 것 같습니다. 만일 내가 그 아이와 관계를 맺었다면 아마 결혼을 했을 것입니다. 그 아이와 헤어지게 된 것은 그 아이 나름대로 갈등이 많았거던요.. 제가 소위 때 그 아이는 중학교 국사선생을 시작했는데, 그 아이는 내 조카의 담임이기도 했고.. 내 조카는 담임이 삼촌의 애인인 줄 알았지만, 본인은 조카를 몰라봤습니다.
 
제가 광주상무대에서 교육을 받는 중에, 친구로부터 그 아이가 선을 보는 현장을 보게 되어 저에게 소식을 전했는데, 그 말을 듣고서 제가 삐쳐서 수료하는 날 광주로 온다는 아이를 제가 부산 가니깐 그때 보자고 하고선 서울 형님집에 짧은 휴가를 마치고 전방으로 갔습니다.
 
그러다가 참으로 이상한 것은 집사람과 결혼날을 잡은 후 부산에 갔다가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터미널로 가는 길에 그 아이를 보게 되었는데, 그 아이 뒤를 따라가다가 그 아이가 어느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결혼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려고 그 아이 남편과 걸어가는 아이 뒤를 따라가면서 정류장에서 1미터 앞에 두고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는데.. 그 이후 한 번도 본 적은 없습니다.
 
그 외 등장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아무런 사고를 치지 않아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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