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4. 고교시절

포병역사 (onrt20 , 김여홍) 2007. 7. 10. 14:39

고교시절 1.

고교시절은 그래도 조금 이야기꺼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예비소집에 갔더니 영어와 수학에 대한 과제물이 많았는데, 고교과정이지만, 혼자서 열심히 풀었습니다. 모르는 것은 건너뛰면서..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주변에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다보니..입학식 후에 배치고사를 봤는데 맘에 드는 점수는 못받았습니다.

 

재미없는 공부부터 먼저 이야기하면..

저는 중학교때부터 수학은 무진장이 잘 한 편입니다. 그래서 1학년동안은 최상위권에 속했는데, 문제는 2학년때 돈을 아낀다고 헌책을 장만했는데 일부 과목은 개학하고도 한달이 지날 때까지 구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제가 이과였기때문에 수2을 공부했는데, 내가 구한 책이 비를 맞은 책이라서 보통 책의 부피보다 2배가 되었고 남이 보던 책이라서 그 책을 좀 멀리하게 된 점도 있었고, 1학년때 공통수학을 잘하다보니, 조금 부족한 영어공부에 치중하느라 수학을 좀 멀리했더니..

 

어느날 영어의 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당시에는 참고서가 별로 없었지만, 수학은 남들은 정석을 볼때, 해법수학을 보았고, 영어는 남들은 정통종합영어를 볼 때, 백만사에서 나온 1200제라는 책을 보았다. 영어에 어느정도 자신이 생기다보니 영어로 된 성경책을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습니다.

 

2학년이 되자마자 첫모의고사를 보게 되었는데, 그당시 너무 어렵게 출제되어 70% 인원이 빵점이 이었고, 전체 평균이 10점이었습니다. 그당시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는 점수가 우리학교 모의고사에서 40점정도면 될 정도로 어렵게 내었는데. 첫 시험은 학교에서 쇼크를 주기위한 문제이었지만..문제는 저도 빵점을 받았거던요..

 

그래서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해서..그 당시 엄마는 나이도 많았고, 몸도 불편한 상태였지만, 그 먼길을 걸어서 학교에 왔는데. 담임선생님은 처음에는 할머니가 오신 줄 알았는데..모친이니. 그날 종례시간에 저만 무진장이 얻어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영어는 제가 누구보다 잘 안다는 생각으로 선생님의 문제풀이가 틀렸다고 우길 정도이었는데, 어느날 자존심 강한 영어선생님의 설명이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가..빰을 무지막지하게 맞았는데..제 머리가 교실벽에 있던 못대가리에 찍혀서 피가 펑펑나니깐 선생님이 당황해서 급히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끝났는데.그날 집에 가서 저는 친구들하고 장난치다가 다쳤다고 말했고,

 

그 당시 일부 부유층 애들은 학교 선생님으로 부터 몰래과외를  받고 있었는데, 시험치기 전에 출제예상문제 풀이도 겸해서..이 사실은 알게 된 계기는 이 영어선생님이 조금 미안한 생각과 내가 영어를 잘하니깐 자신의 과외팀에 끼워주었는데, 나는 단 하루만 가고서 그만 두었습니다..너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처음, 고등학교들어갈 때 제 목표는 모교인 동래고의 수학선생이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1차 모 국립대학 사범대학 수학과를 지원했다가 낙방한 후, 남들보다 나이가 많은 관계로 대학을 안가면 군에 간다는 절망감때문에 성균관대학교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다소 후회하는 건 그때 성대 사대 수학과를 택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지금도 사주를 보면 분필을 잡아야 할 팔자라는 말을 듣거던요. 왜야하면 그당시 생각으로는 성대 수학과를 나오면 모교로 갈 수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에 알았지만..그보다 못한 학교나온 애들도 선생이란 직업을 잘하고 있더먼...

 

학교생활은 공부만 하는 모범생인 저는 1학년초에 교회 울타리밖에서 우리학교 교복을 입은 신입생 무리들이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서..제가 교무실로 전화를 했는데..그다음날 그 무리들은 학생과에서 무진장이 혼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날 우연히 화장실에서 한참 혼나고 나온 그 무리들과 부딪친 저는 혹시 신고한 저를 알까봐 무진장이 긴장하고서 나왔습니다..그들은 그당시 레인보우라는 폭력써클의 멤버이었는데..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공부도 꼴등에 해당하고 거의 대학도 못간 그들이 서울에서 동기회를 금전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사장들이란 사실입니다. 그당시 공부잘하던 아이들은 대학교수나 선생이 되어서 자존심때문에 모임에는 안나온다는 그런 40대 후반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교시절 2.

고교시절은 학교공부와 교회생활이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밤 11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밤은 예배보려 교회를 갔습니다. 학교생활에서는 방과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도 어느누군가 축구를 하자거나 찜뽕이라고 고무공으로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운동잘하는 애들이 공부도 잘했던 것같습니다.

 

우리집에는 고3이 되어서 전기불이 들어왓습니다. 그전까지는 호롱불밑에서 공부했는데..하지만 전기가 들어오는 바람에..처음으로 장만한 티브를 본다고..특히 명화극장..그것때문에 고3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잘못 마무리를 했습니다. 우리집은 군대갈 때까지 전화가 없어서..고교시절이나 대학시절 방학때 집에 와도 다른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연락두절의 상태였습니다.

 

교회생활은 고등부 학생회장을 했기때문에, 아주 적극적으로 교회생활을 했는데, 그중에서 생각나는 것은 그 당시 우리교회에는 부산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서울법대를 졸업한 후 행정고시를 패스한 후 지금 국방대학원 교수를 하고 있는 한용섭 선배와 그 동생인 지금 서울법대 교수 한인섭 선배, 여동생인 서울대 가정과 졸업한 한인숙이란 남매가 있었는데, 저보다는 4년, 2년 선배와 1년 후배의 순이었습니다.

 

그중에 한용섭이라는 형은 교회에서 공부할 때, 한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놓고 얼음물에 발을 담그고서 공부한 그 형, 그리고 그 형을 제 친구 누나하고 짝을 지어주려고 제가 맞선도 주선하기도 했는데..

참, 제가 노래를 좀 하는 편이라서 그당시 부산에서 중고등부 연합성가경연대회가 있었는데, 우리교회에서는 여자 3명에 남자 1명이 중창으로 참여했는데..남자 1명이 바로 저랍니다.

 

1절은 여자들만 하고, 2절 후렴은 저 혼자서 하고, 3절은 간주, 4절은 같이 부르는 건데..1절을 부르는 동안 너무 긴장하다보니 2절 후렴에서 제가 목소리를 못내어서 그냥 통과했고, 4절은 겨우 모기소리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제일 (격려)의 박수와 웃음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무대를 내려오는데 저는 얼굴이 빨게져서 고개도 못들고 내려왔고, 그 여학생중 1명의 어머니가 저희교회에서 입김이 센 분이었는데, 경연대회 참가하기전에 맛있는 걸 사준다고 하더니..끝나고 나니..나때문에 창피만 당했다고 여학생 3명만 데리고 짜장면 먹으려 가는 뒷모습을 보고서 참으로 쓸쓸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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