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1. 유년시절

포병역사 (onrt20 , 김여홍) 2007. 7. 10. 05:45

1958년 3월 1일 부친 58세, 모친 48세에 7남매 (남3녀)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늦게 본 저를 키우는게 창피했는지 남의 집 양자로 보내려고 했으나 형님들과 누님들이 반대하여 막내로서 살았습니다.
 
기억속의 집은 부산 동래 온천2동(옛날의 지명으로는 산저)에 있는 집마당에 옥수수와 콩대가 있던 집이었습니다.  또한 생각나는 집으로는 보리누나가 살던 집, 그리고 대감집이라던 집 그리고 또 다른 집이 기억속에 희미하게 생각납니다.
 
그 곳에서 살면서 기억이 나는 것은  어릴 때 자주 먹던 콩이 들어간 음식에 너무 질려서 일부러 어느날 헛구역질을 하면서 못 먹겠다고 했더니 그 다음날부터 콩이 들어간 밥이 밥상에서 사라졌습니다. 한번은 고교 22년 선배인 서울대 다니던 큰형이 방학때 집에와서 불렸던 메기의 추억이라는 곡조가 귓가에 남아 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이면서 중고등학교때는 같은 교회를 다녔던 친구의 집에는 말이 있었는데, 어느날  금정산 중턱으로  아버지가 손수 세멘트 블럭으로 집을 짓고 있던 가건물로 온가족이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집에서 바라보는 아랫동네의 풍경이 멋있는 전망이 좋은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을 짓는 도중에 무허가 건축이라고 해서 공무원들이 와서 뜯고, 아버지는 그 옆에서 발부등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곳에서터 조금 떨어진 절 소유의 땅을 쌀 몇가마를 주고서 구입한 후,  이번에는  진흙에다 볏짚을 이견 흙벽돌집을 급히 짓기 시작했습니다.
 
연못이 있는 넓은 정원을 가꾸고, 한쪽에는 또다른 텃밭도 만들면서 살았는데, 어느날 우리집 앞에 다른 분이 집을 지으면서 우리집 마당은 많이 없어졌고, 또한 그 좋던 전경이 앞집때문에 가려져서 답답은 하였지만 여름에는 냉장고 역할을 했던 우물과 장독대의 모습이 선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방안에는 메주가 익는 냄새와 장독대에서 나는 각종 장종류의 익는 냄새가 조화를 이루었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6살부터 살았는데, 놀이는 땅따먹기나 새총으로 새를 잡거나, 다망구라는 것을 하면서 철없이 뛰어놀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남을 때린 적도 맞은 적도 없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놀다보니 학교 가야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남들은 모두가는데 나만 안가서 확인해보니 엄마가 깜빡했나봅니다. 그래서 9살에 국민학교를 갔는데, 나이가 많다고 해서 유치원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족이 갑자기 이사하게 된 이유는 엄마가 계주로 계모임을 하다가 그것이 깨어져서 그것을 처리한다고 집을 처분했다는 것을 그후에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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