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9. 소위시절2

포병역사 (onrt20 , 김여홍) 2007. 7. 10. 14:46

포병장교는 통상 관측장교로 대부분 근무하는데, 육사출신은 대대사격지휘장교라는 직책은 받지만 단기복무하는 학군출신을 대부분 그렇게 보직을 받습니다.
 
제가 소령 때 포병학교에서 교관을 할 때, 육사출신을 제외한 나머지 출신 초군반소위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자대 가서 누군가 장기지원을 권하거나 자신이 하려고 한다면 판단의 기준을 자신이 사격지휘장교로 보직을 받았는가를 고려하라고, 특히 육사출신대대장 밑에 육사 소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격지휘장교로 보직을 받았다면, 그 대대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같은 출신 대대장이 사격지휘장교보직을 주었다면 그것은 80점짜리라는 말도 함께..
 
통상 오뚜기사단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발사단이라고 했습니다. 너무 걸어서 발이 다 닳아서 오뚜기처럼 되었다나.
 
저는 보병 중대장하고 훈련을 가면, 찰거머리같이 따라다녔습니다. 관측반은 통상 작은 천막에서 별도로 잠을 자는데 보병들이 출동하면서 깨우지 않아서 혼자서 꿈속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리고 보병들은 파견온 관측반을 밥을 안주는 경우가 있어서, 제 경우는 천막도 중대장 텐트 옆에 치고, 밥 먹을 시간에는 그 주변을 어서렁거리고도 했고, 행군할 때는 보병중대장 뒤를 바짝 붙어서 다녔기 때문에 찰거머리라고 별명이 붙었습니다.
 
기억이 나는 병사 중에는 관측반의 무전병인 박일병이라고 있었는데, 추운 겨울날 보병연대 RCT훈련할 때, 그 당시 훈련을 하면 일동에서 학저수지까지 그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공격방어를 할 때, 전투화를 신고서 하천을 도하하였는데, 목표탈취 후 휴식시간에 동상에 걸리지 않게 전투화를 벗고서 마사지를 해주라고 했더니 안하려고해서 강제로 시켰는데, 발바닥을 보고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발바닥의 껍질이 모두 벗겨져서 빨간 토마토처럼 심각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묵묵히 훈련에 참가하다니...
 
어느 날 선배들이 물려받은 가짜 휴가증 받아서 주말에 서울로 도망을 나왔는데, 막상 서울에 나와도 갈 곳도 없었고, 서울의 매연이 너무 심하고, 또한 몰래 도망 온 것이 불안해서 그날 바로 복귀를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일직사관으로 근무를 할 때,  점호시간에 이런저런 나의 지난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면 다들 눈물이 글썽글썽하기도 했습니다. 군가대신에 어버이날 부르는 노래도 합창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근무를 서는데 하사가 와서 지금 집사람이 면회를 왔다고 외박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저는 어디 술집여자보고 면회신청해달고 한 것이 아니냐고 도리어 야단을 쳤습니다. 하사가 결혼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거던요..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는데.. 그 여자는 비를 맞으면서 면회가 신청되길 기다리다가 융통성 없는 신임소위 때문에... 혼자서 애기를 업은 체 비를 맞으면서 시댁인 전주집으로 갔습니다... 그다음 날 결혼한 사실을 확인하고서 너무 미안한 맘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저희 동기들은 매월 봉급날은 밖에 나가서 개인당 맥주 1병에 닭 한 마리씩 먹거나 삼겹살 회식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는데, 그렇게 먹고서 어깨동무하면서 각종 군가를 부르면서 오다가 위병소 근무가 형편없다는 둥하면서 근무자들을 혼을 내기도 하고 위병소를 엎어버린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선배장교들은 그건 초임장교만이 할 수 있는 패기라고 모른 척해주었습니다.

'나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 소위시절4  (0) 2007.07.10
10. 소위시절3  (0) 2007.07.10
8. 소위시절1  (0) 2007.07.10
7. 초군반시절  (0) 2007.07.10
6. 대학시절3-4  (0) 2007.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