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22. 사고사례

포병역사 (onrt20 , 김여홍) 2007. 10. 19. 10:22

1. 사고사례

가. 교육계 고막파열 구타사고

포대장으로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격오지 독립포대인 관계로 여러 계통으로 검열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때는 사단 참모부, 연대 참모부, 감찰, 헌병 등의 불시검열을 받다보니 뒷수습을 한다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포대장으로서 근무를 시작후 3일차에 행정병중에서 선임이었던 서무계(병장)가 교육계(병장)에게 자신의 업무를 펑크내지 말고 잘하자고 독려를 하다가 얼굴을 때린 것이 잘못되어 고막이 나갔다는 보고를 받고서 상급부대에 보고를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조치한다고 통상 고막은 자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야간근무는 불침번으로 조정해주고 각종 훈련에서는 자대에서 휴식을 할 수 있도록 잔류조에 남기면서 민간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게 했는데 다행이 완쾌되어서 두명 모두 무사히 제대를 하였습니다.

 

나. 손목동맥 자해사고

포대 행정병 보직은 선임병이 후임병을 추천하여 포대간부들이 동의하면, 행정병 보직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고참병들은 업무를 인계한 후에는 개인시간을 가지면서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데, 후임병을 잘못 선택하면 수시로 행정반으로 불려와서 뒷처리를 해야 하기때문에 자신을 위해서 후임병중에서 가장 일을 잘할 수 있는 인원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외 특이하게 포대장이 직접 행정병으로 뽑는 경우는 견인포병의 특성상 신체적으로 결함, 특히 디스크 등으로 입대전부터 결함을 갖고 있거나 포대생활을 하다가 부적응하는 병사들을 지근거리에 놓고서 관리를 요하는 관심사병들을 행정병으로 보직을 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전입 신병과 면담을 하는 도중에 각종 검사에는 이상이 없는데 본인은 허리통증을 호소하는 병사를 일단 보직인원이 가장 적은 2포반에 보직을 준 후(잠자리 침상문제), 낮에는 행정반에 대기하면서 잔심부름과 독신숙소의 연탄불을 관리하도록 임무를 주었는데. 그 병사가 보직된 2포반은 막내가 상병이라서 모처럼 신병이 왔다고 좋아하다가 잠만 2포반에서 자다보니 많이 시달린 모양입니다.

 

저희 포대는 울타리가 허술하여 병력통제에 어려움이 많아서 평상시 요주의 병사가 보고없이 위치를 이탈하여 제 눈에 보이지 않으면 5분대기조를 출동시켜서 찾은 훈련을 많이 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이 병사는 내무반장에게 독신자숙소 연탄을 갈려간다고 말하선 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오지 앉자, 바로 포대지역을 수색을 했더니 자신의 왼쪽 손목 동맥을 카트칼로 절단한 후 독신숙소의 연탄불에 코를 데고서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 인접한 보병연대 의무대에서 응급조치를 받고서 사단 의무대로 후송을 하였습니다.

 

대대장은 대대에 보고를 하지 않고서 타부대 의무대로 간바람에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것을 복잡하게 했다고 혼은 났지만, 저는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데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같은날 인접 포병대대에서 대형화제사고로 취사장이 전소된 사건때문에 저희 포대문제는 소문도 나지 않고 조용히 끝났습니다.

 

다. 또다른 고막파열 구타사고

저의 포대지역은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 있었습니다. 영외 사단주보급로와 영내 병사들이 주로 다니는 길을 우선적으로 제설작업한 후, 연병장에서 설중 축구를 하다가 이제는 더 눈이 안오겠지하고 전병력을 투입하여 연병장 제설작업을 하고난 후, 그날 밤에 더 많은 눈이 내릴 때는 정말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밤에 성격이 모난 병장이 소변을 보려 야외화장실로 가다가 미끄럽기도 하고 너무 추운 관계로 막사뒤에서 몰래 해결하려고 했더니 먼저 온 상병이 일을 보고 있어서 화가 나서 "너때문에 내무반에 오줌냄새가 진동한다"하면서 얼굴을 한대 때린 것이 잘못되어 고막이 터져나봅니다.

 

그다음날 아침에 출근에서 고막파열사고보고를 받고서 고막이 터진 병사가 화목을 가지고 내려오다 미끄려지면서 귀에 잘못 맞아서 고막이 터졌다는 말을 듣고서 그대로 지휘보고를 한 후 사단 의무대로 외진을 보냈는데, 외진 갔다온 병사가 무엇인가 불안해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막이 재생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터졌고 치료를 잘못하면 귀가 먹을수도 있다는 말을 들고서 갈등을 했고, 치료비가 200만원정도 든다는 것도 부담이 갔나봅니다.

 

구타사고의 전말을 듣고서 일단 최초보고를 잘못한 관계로 구타자. 구타유발자, 간부책임 등을 고려하여 일단 200만원을 만들어서 그 병사통장에 입금을 시킨 후,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했는데..

 

이일 이전에는 병사들의 잘못에 대해서 정신교육위주로 실시했다가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서 사소한 구타사고나 불미스러운 일만 생기면 원칙적으로 처리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구타자와 구타유발자는 모두 온전한 몸으로 전역을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전역자의 소원수리에서 포대를 위해서 취사장 냉장고 취식물 절도사건을 해결하려고  뭔가를 하다가 저에게 적발된 병사를 입창을 시켰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서 고막파열사고를 이야기했나봅니다. 그래서 야외훈련장에 연대주임원사가 와서 이것저것을 물어보길래..

 

제가 조치한 대로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동안 혹시 상급부대에서 알면 어떻게 하나하고 노심초사하던 맘이 풀리면서 도리어 편해졌습니다. 마치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이...이 사건에 대해 어느 누구도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기때문에..

 

라. 차량사고

KH-179 포신포병 독립포대장을 했기때문에, 평상시나 훈련시 차량운행시 심적부담이 많았습니다. 일부 차량은 가솔린 차량이라서 시동이 꺼지면 브레이크가 듣지도 않는 노후차량도 보유했는데, 전임 포대장은 K-200이란 노후짚차를 타고 대대회의를 다녔지만, 신형짚차를 받기위해서 반납이 들어가서 5/4톤 차량을 대대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행정용으로 사용하다가 대대 5/4톤 차량부족으로 2 1/2톤 탄약차를 주로 타고 다녔습니다.

 

대대 회의를 마치고 포대지역을 순찰하기 위해 포대위병소에 내린 후, 1포상에 갔는데, 트럭은 경사가 많이 진 포대내부 도로를 올라가다가 기어변속을 하다가 시동이 꺼져서 위병소를 향하여 돌진을 했는데, 외부에 있던 동초는 내려오는 폼이 수상한 차량을 보고서 반대편으로 피했고, 초소안에 있던 조장은 마침 용변이 겁해서 잠시 자리를 비운 초소막을 덥쳐는데 다행히 아무런 피해도 없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또  한번은 전방에 추진된 공병중대로부터 싸리비를 한차 분량을 주면 시멘트 한대 분량을 준다는 제의가 있어서 통신과 선임회사가 선탑하여 시멘트를 실고 포대를 복귀하다가 운전병에게 담배를 주면서 피울 수 있도록 담배불을 붙혀준다고 하다가 운전병의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급경사와 왼쪽의 낭떠러지가 있는 고개길에서 앞바퀴가 허공에 떠 있는 사항이 발생하였는데,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주변부대의 레카차를 동원하여 안전하게 포대까지 복귀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운정병중에서 기량이 부족하여 주로 2 1/2톤 정찰차를 운전하던 말년 병사가 전역전에 포를 견인한 5톤 포차를 운전하고 싶다고 해서 훈련 마지막 진지에서 포대로 복귀할 때 운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포차를 제대로 지나갔는데 KH-179 화포의 한쪽 타이어가 길가에 있던 직경 20센티 포플러나무를 타고 올라가면서 포신이 기우는 것을 뒤에서 보고서 맘이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윗쪽 나무가 가늘어서 미끌려 퉁하고 떨어지는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마. 하극상 폭행사고

성대 다니다가 4학년때 군에 온 키가 작은 병사가 있었습니다. 군에 온 시기와 그 병사가 활동하던 지하서클의 이름을 듣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재차 확인을 했더니, 누나가 현재 데모를 하다가 구속수감되어 있고, 자신은 군에 가지않으면 그 서클로부터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서 군입대를 했으며, 모친은 민가련회원이라는 말도 듣게 되었습니다.

 

신체상으로 관절염이 심해서 1주일한번씩 외진을 가서 물을 제거해야 하는 그런 어려움이 있어서 포반생활은 힘들 것같아서 일단 사격지휘소요원으로 보직을 주었는데, 이 병사도 많은 시간이 지나자 병장이 되었는데, 그당시 직책이 HCO라서 집결지도판을 작성하는데 상병인 측각수와 작성방법에 대해서 이견이 있어서 다투다가 상병이 병장을 구타했다는 말을 듣고서 바로 차에 태워서 차 상병은 입창 15일, 박 병장은 연대 정신교육대 5일입소를 시켰는데..그 다음주에 저희 포대가 시험을 받는 날이었는데도....가장 중요한 직책의 병사를 빼고서 포대시험을 받았습니다.

 

바. 성 추행 사건

어느날 김 병장에 저를 찾아와서 도저히 못견디겠다는 말을 듣고서 이유를 들어보니, 전임 포대장의 짚차 운전병을 했던 하병장이 입대후부터 병장이 된 지금까지 밤마다 자신에게 여러가지 성추행을 해서 어제 저녁에는 야삽을 찍어버리고 싶다는 말을 듣고서 바로 그 병장을 차에 태우고 대대에 보고한 후 헌병대 입창을 시켰습니다.

 

통상 징계를 하다보면 시기를 놓칠 수도 있고 여기저기서 압력이 들어오는 경우도 많거던요. 사실 하병장의 부친 그 당시 모은행 지점장이었는데..그렇게 조치한 후 그 병사는 다른 포대로 전출조치가 되었습니다. 병사간의 성추행 사건은 옛날에도 있었지만, 다들 방치한 결과라고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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