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21. 대위시절7

포병역사 (onrt20 , 김여홍) 2007. 10. 18. 12:51

원주에 위치한 향토사단 포병연대 창설요원으로 차출되어 전출가게 되어 군대문화에 적응을 못하는 집사람을 위해 군 아파트보다는 태장동에 있는 민간아파트를 전세를 얻어서 살았습니다. 그때부터 집사람은 아들에 대해 혹독한 교육을 하면서...

 

저는 그곳에서 천막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면서고 한쪽에서는 공사중인 그런 곳이었습니다. 한참 공사중인 기간에 소령진급 발표가 있었는데...

 

그당시 그곳에는 저와 함께 승리사단에서 전출온 다른 대위가 있었는데, 그 대위는 오전에 진급이 된 것을 승리사단으로 부터 연락을 받았지만, 저에게는 연락 온 것이 없었습니다. 그 시간 집사람은 집에서 울고불고 하면서 ..저는 여기저기서 진급이 되지 못한 원인이 무엇이냐 등 이제 제대할 준비를 하라는 등의 말을 듣고 있는데,

 

옆 천막에서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육사출신 연대장이 불려서 갔더니 어떻게 되었냐고 묻길래 안되었다고 했더니 그분께서 김**이라고 동명이인이 있냐고 물어서..제 이름은 특이해서 없다고 했더니..본인이 확인해 보니 진급자 명단에 있다고 하시면서 집사람에게 먼저 전화를 하라고 하더군요.

 

그때 집사람도 승리사단의 배대위 가족과 울면서 통화를 하는데..전화기에 복도를 뛰어올라오면서 외치는 작전과장 사모님이 하는 말..김**이 됐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해 승리사단에서 대상중에서 추천서열의 상에 해당하는 인원이 6명인데, 저와 같이 왔던 다른 대위는 추천서열을 못받았기때문에 아예 진급될 것이라고 생각을 안해서 확인을 안했고, 그쪽에서 인원을 확인하니 진급자가 저를 제외하고 6명이 나와서 더 이상 확인을 안했다고 합니다. 그 대위는 다른 사람이 알고서 연락을 해주었고...

 

그 뒤에 시범장에서 윤중령님을 만났는데, 그분은 학군선배로 육본진급과에 근무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성대, 국방대학원 석사과정, 고군반 성적 상, 그리고 3차진급시기라서 진급시켜보려고 진급심사위원들이 제 자력표를 밑으로 내려놓으면 또 올려놓고 하는 일을 여러번 했나봅니다. 그래서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최초 진급자 명단(기무사자료)에는 없었는데 그 후의 명단에 제이름이 있었다는 말도 있고..정말 불가사이한 일이었습니다.

 

진급후 그곳에서 작전과장을 하다가 장교영어반을 가려고 지원했는데, 그 당시 사단전투지휘검열이 있다고 실무자가 접수를 시키지 않아서 시험도 못치고 있는데..

 

교육사 체계분석실장(국대원석사과정 동기 3사 고참분)이 전화가 와서 자기 밑에서 함께 근무하자고 했는데, 제가 자존심이 강해서 차후에 육본이나 국방부에 가서 근무하겠다고 거절을 한  후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박사과정 시험을 접수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쌍용포병여단의 본부대장으로 오라는 명령을 받게 되어서 그곳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쌍용포병여단장이신 학군4기인 박장군님은 성균관대 선배로서 그분 처제하고는 같은 교회를 다녀서 잘 아는 사이라 차마 거절을 못했는데..그것 역시 두고 두고 후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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