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지보수공사
가. 군단 공병장비 인수
군인이라면 모두 진지보수공사를 하는데, 포병의 경우는 진지 생존성 향상을 위해서 공사를 포대자체 장비나 인력을 한다면 너무나 공사길이 험합니다.
단계별 진지에 대한 진지보수 중에서도 주둔지 쪽 공사를 하면서 느낀 점을 말하고자 합니다. 공사를 하기전에 자체방어계획을 수립하면서 인원, 장애물, 화력 등을 배치하게 되는데 공사와 관련된 것이 1지대의 개인호, 2지대의 핵거점진지와 방벽, 그리고 포상 개인호를 구축해야 합니다.
무지원무자재원칙에 의거 자체노력으로 모든 것을 획득해야 하는데. 진지공사를 하는데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이 떼(잔디)입니다. 그러다보면 주변 묘지의 잔디까지 몰래 굴토해 가서 작업을 하다가 민원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포병은 2미터 높이의 몇백미터나 되는 2지대 방벽작업을 하려면 많은 흙과 떼가 필요한데, 5톤 포차 한대에 실고 내리는 것은 병사들이 직접한 물량도 내려놓으면 얼마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상급지휘관들이 현장지도를 하면 이렇게하라 저렇게 하라하면서 위치조정을 시키는데 그것을 조치할 때 정말 눈물이 납니다. 단1번에 정확한 위치를 잡아주지..오는 사람마다 다르니...
그런 과정을 보다가 저희 도로담당구역에서 대전차장애물을 설치하던 군단공병이 있어서 그들이 사용하는 포크래인과 덤프차를 지원받기 위해서 현장에서 임시숙소로 이동하는 포크래인 뒤를 따라가면서 인솔간부(소위)에게 사정사정해도 잘 안되어서 그중에 제일 고참 병장에게 너희들이 반나절만 도와주면 우리 포대원이 한달해야 하는 작업량을 할 수 있으니 도와달라고..나를 생각하지 말고 고생하는 병사들을 봐서 도와달라고 맘으로 호소했더니 도와주더군요.
2. 기타 이야기
가. 5분대기조 출동사건
저는 병력관리를 위해 5분대기조를 활용을 잘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병사들도 본인이 간부에게 보고하지 않고 위치를 이탈하거나 정해진 시간내 막사로 복귀하지 않으면 바로 5분대기조를 출동한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모두 조심을 했습니다.
사단내 모부대가 진지를 작계상진지하려 화천까지 갔다가 두릅하고 비슷하게 생긴 옻나무 순을 잘못 끓여먹어서 전체인원이 식중독이 걸려서 사단장 지시로 산채채취와 취식을 못하게 하였습니다.
저희 포대주변에 각종 산채가 많았는데, 포상 1동에 있는 치나물만 깨면 포대원전체가 한끼를 별미로 먹기도 했고, 울타리주면에서 달래케어서 볶은된장에 찍어먹으면 그것 역시 별미였지만, 지시를 받은 후에 일체 취식을 못하게 했습니다.
어느날 민통선 북방에 있는 저희 포대주변에서 군인가족(사단장 사모님과 사단참모 가족)들이 산채를 케고 있다는 대공근무자의 보고를 받고서 5분대기조를 출동시켜서 모두 잡아들였는데...하지만 그 일의 후유증은 없었습니다. 경계근무도 잘했고, 지시사항을 잘 지켰는데..어느 누가 시비를 걸겠습니까!
나. 비사격훈련 활성화
저희 포대는 외부로부터 검열을 받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지적사항도 나오고 해서 제가 편법을 사용하면서 포병은 항상 즉각사격사격준비를 해야 하는데, 저희 포대는 특임작전수행부대라서 더욱 중요한 업무입니다.
이러한 것을 평상시 훈련시키기 위해서 제가 포대위병소를 통과하는 순간(출근, 대대회의 참가, 또는 퇴근)은 무조건 비사격훈련을 지켰습니다. 그기에다 추가로 외부에서 검열단이 위병소를 통과했다고 위병소에서 벨을 눌리면 사격지휘소에서 바로 비사격임무를 내리도록 했는데, 그결과 1석2조의 효과를 얻었습니다.
비사격훈련도 되고 검열자들은 갑자기 비사격을 하려 현 복장차림으로 여기저기서 비사격이라고 복창하면서 뛰어다니는 포대모습을 보고서 검열할 생각은 못하고 구경만 하다가 커피한잔 마시고 조용히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포대가 살아있고 무엇인가하려는 그런 모습에 반해서...
다. 체육공원 조성관련 이야기
대대지역으로 진지교대를 한 후, 그당시에는 상급부대 지시에 의해 체육공원이라는 것을 조성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저는 대대로부터 못 1개로 지원받지 않고서 주변의 민간인이나 공병부대 후배들을 통해서 많은 자재를 확보하여 정말 멋있게 만들었습니다.
포대장 중에 참모를 할 때 저를 난처하게 했고 진지교대후 전방 독립포대에서 포상 위장망을 야간에 개폐하지 못하여 그 잘못을 저에게 돌렸던 그 3사 출신 포대장은 시멘트 10포를 다른 곳에서 확보한 후 3사 선배인 대대 군수장교에게 자신이 대대장에게 시멘트 10포를 지원해달라고 건의하면 대대장이 군수장교에 지원가능여부를 물어면 가능하다고만 이야기 하라고 하면서 일단 대대에서 시멘트를 받은 후 자신의 확보한 것으로 다시 돌려주겠고 사전에 조율을 했답니다.
저는 시멘트만 300포 이상 들어가고 분수대와 대학 친구로 부터 받은 각종 체육용품을 비치하고서 공사후 연대장을 초청해달라고 했더니..대대장은 저희 포대가 아닌 전방의 그 포대로 연대장을 초청했답니다.
왜야하면 대대장은 저희 포대의 체육공원 조성에 지원해준 게 없으니..생색낼 것이 없잖아요..그로 인해서 배운게 있습니다 윗사람에게 제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보다 이것을 준비했는데 어느것이 조금 모자라니 도와달라고 하는 부하가 더 이쁘다는 것을..
라. 의식화병사 선도
저희 포대원중에는 과거 운동권에서 활동하다 위장입대한 인원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부산 동의대에서 전경들을 불로 태워 죽었던 그사건의 배후인물..
그당시는 관심사병들의 서신을 몰래 보는 것이 허용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부산출신이라서 부산출신중에서 한명인 박 이병의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누나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중에는 동생이 어느 책을 보고서 독후감으로 온 내용때문에..제 자신이 과거에 그런 책을 많이 보았기때문에 척보면 압니다.
그래서 어느날 모른 척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본인이 밝혀지지 않은 배후주동자라고..관련내용을 기무대에 보고한 후 특별관리는 했는데, 그당시 각종 웅변대회나 단막극 시나리오를 작성하라면 정말 멋진 작품을 만들어서 포대에 기여를 했고, 정신교육시간에는 시각조정을 위해 발표를 많이 시켰더니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사단 웅변대회에 보내면,,다른 참가자들이 기립박수할 정도로 정말 언어선택과 언변술이 뛰어나서 그로 인해 상도 많이 탔고 휴가도 많이 보내주었습니다. 전역시에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사회로 진출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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