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29. 포병영관시절5

포병역사 (onrt20 , 김여홍) 2007. 12. 1. 12:57

부대관리와 병행해서 심정주변에 대한 순찰을 자주했는데, 이는 심정관리병사들이 수시로 울타리밖으로 이동하기때문에 병력관리차원에서 했고, 심정옆에 낚시대를 던져놓고 저녁에 혹시나 하는 맘으로 가면 낚시바늘에 물려 있는 물고기를 잡으면 간부식당으로 가져가서 매운탕을 해먹기도 했다.

 

공관주변은 환경정리차원과 공관시설에 대한 경계차원에서 하루에 한번씩 내려가는데, 자연정화운동을 하면서 춘천댐 주변에서 낚시하는 분들 주변에 얼쩡거리면서 그분들이 산채로 고추장찍어 먹는 횟감의 맛은 감질이 날정도였다. 간혹 순찰중이면서도 낚시꾼이 주는 소주도 얻어마시면서...

 

그런데 자연보호운동을 하려가면..영 찝찝한 것도 많이 있다..팔각정주변에는 밤새 일을 치룬 후의 두고간 콘돔, 휴지, 간혹 피가 묻은 팬티...어떤 경우에는 차안에서 무엇을 하는지..차가 흔들리는 것도 목격할 때도 있고..

 

본부대장을 하면서 부대내에서 사소한 구타가 있으면 무조건 원칙대로 처리를 하였다.

추운 겨울날 한번은 수송부에서 후임병이 고참병 차앞에 짚차를 세워놓고 시동을 켠채 화장실을 간 모양인데, 고참이 참모가 순찰을 간다고 차를 가지려 갔더니 그 차가 앞에 세워져 있어서 번거럽게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운행을 갔다와서 후임병(대졸)이 건방지게 고참차(고졸)앞에 차를 세워놓았다고 한 대 쥐어 막았는데..고막이 파열되어 구타한 병사는 일단 헌병대에 15일간 입창시킨 후 징계처리를 했고, 고막이 나간 후임병은 일단 정상적인 치료로 고막재생이 완쾌된 후, 고참 구타유발행위를 했다고 5일간 입창을 시켰으며,

 

또 한번은 어느 병사의 부친으로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는데, 면회를 와서 같이 아들하고 목욕을 하려고 했더니 한사코 하지 않으려고 해서 보니 다리부분에 멍이 있는 것을 보고서 그 분과(측지반) 최고선임병을 처벌하라고 해서, 일단 선임병을 처벌하면 앞으로 군생활이 많이 남은 아드님이 다른 선임병으로부터 제대할 때까지 힘든 생활을 할 수도 있으니 제가 처리하는 형량이 미흡하다면 다시 말하라고 하고선..

 

말년 휴가로 15일간 고향인 제주도로 휴가중인 병사들 복귀시킨후 13일간의 휴가를 박탈하는 것으로 종결지었다. 그 선임병은 부대내에서 온갖 어려운 일을 처리했던 병사라서 1년동안 포상휴가를 5번이나 갔다왔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고, 그정도면 다른 병사에게도 교육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지휘통제실 외곽에 배수로 작업과 병행하여 철조망을 작업을 하면서 전신주를 지지하고 있는 줄이 철조망작업을 하는데 방해를 하여서 그것을 뽑은 다음 배수로 너머로 옮겨야 하는데 배수로때문에 직접들고서 이동시키지 못하고 들어서 던졌더니 그것이 고압선과 부딪쳐서 그날 고압선의 휴즈가 차단되면서 부대와 공관지역의 전원이 나갔는데..

 

그 배수로때문에 그철선을 잡고서 던지던 병사와 본인은 운이 좋게 살았는데..한달이 지난 후에 우연히 회식자리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더니 여단장님이 노발대발했다..군이 생긴이래 영관급장교가 고압선 감전사고가 날뻔 한 그런 사건이었다.

 

따라서 간부는 솔선수범한다고 웃통을 벗고 병사들하고 직접 작업하는 것도 좋지만 그와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였다.

 

부대운영비를 직접 운영하면서, 병사들의 복지를 위해 물품을 구입할 때도 100%로 운영비로 하지 않고 5%를 병사들이 부담하게 했는데, 병사들이 진급을 하거나 휴가를 갈 때 시내에서 명찰이나 계급장을 단다고 가지고 나가면 이상하게 그 군복들을 고참이나 전역병들이 옷수선집에서 바꾸어가는 것을 목격하고서 재봉틀을 운영비로 장만한 후, 시중에는 하나에 500원이었지만 병사는 한벌당 100원, 간부는 500원씩 받아서 복지기금을 만들면서, 아침에 병사들 복장검사하면서 계급장이나 이름표가 희미하게 탈색된 것은 손가락을 넣어서 바로 뜯어버렸는데...

 

그러보니 많은 기금이 확보되어..그 기금에서 5%를 내도록 하면서..만일 농구공을 운영비 100%로 산다면 고무공을 사주고 5%를 부담한다면 가죽공을 사준다고 하고, 야구기구 등도 마찬가지로 운영비로 한다면 미트는 모래주머니로 하고 5%를 부담하면 시중에서 좋은 미트를 사주고 공도 시합용으로 장만  해주는 방법으로 햇더니..각종 비품의 관리가 제대로 되었다.

 

한번은 YS정부에서 공관에 골프연습을 못하게 지시가 나와서 골프망을 부대 연병장으로 이동시켜서 야구홈막으로 사용도 했고, T/S 훈련출동준비시 작전참모가 여단장  집무실 천막에 합판으로 바닥과 옆을 치라고 했지만, 전쟁중에 무슨 합판이냐고 하면서 여단 단독훈련시에는 여단장님이 최고로 높지만, 한미연합훈련이니 군단장이나 기타 미군들이 방문해서 본다면 도리어 화가 될 수가 있다고 거절할 정도 고집이 세었는데,

 

 전임본부장은 1년보직후 중간에 집어넣은 돈은 얼마인지 모르지만, 보직을 끝낼때 인사계로 부터 차용했던 300만원을 갚아주는 것을 보았지만, 저는 본부대장을 마치고 육군대학을 가기전에 여러분들로 부터 받은 격려비를 계산해보니..도리어 플라스인 상태로 끝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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