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30. 육군대학 교육생시절

103ROTC #20 / On Artillery 2007. 12. 4. 10:45

여단 본부대장을 마치고

육대 교육을 받기 위해서 아직 숙소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진해 육군대학으로 이삿짐 차를 뒤따라가면서 내려갔습니다.

고속도로를 따라갔으면 더 빨리 갈 수 있었는데, 톨게이트비를 아낀다고 강원도 춘천에서 국도를 따라 꼬불꼬불한 문경세제를 넘어서 진해로 이동했는데,

 

트럭을 따라 갈 때는 안전거리를 일반 승용차보다 많이 두어야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다가 고속도로 어느 구간에서 트럭이 잠시 정차를 하는데, 저도 따라서 정지를 했는데, 승용차와 트럭의 제동거리가 달라서 뒤에서 박을 뿐하다가 트럭을 우회해서 간신히 세웠습니다. 새벽운전이라서 비몽사몽간에 운전한 것도 있었지만,

 

일단 진해 육군대학에 도착하여 무조건을 숙소를 달라고 해서 이삿짐을 드려놓고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육군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고군반 교육때만 마찬가지로 3년후배 기수와 교육을 받았는데, 제가 입교할 당시에 소령급에서도 육대교육이수 후 바로 교관으로 남는 인원들이 있어서 저보다 아래 깃수 교관들이 있었습니다.

 

중간 성적은 94.7점으로 상위층에 속했는데, 같은 학급중에 같은 연도에 임관한 육사생은 88.3으로 상에 속하지 못한 넘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우리조에 속한 임관연도는 저보다 빠른 여군장교가 있었는데, 남편이 학군 19기라서 저는 형수님이라고 불렸는데..어쩌다 두사람 사이에 끼어서 육사 38기와 말다툼을 하게 되어...

 

3사 고참 출신 교관이 주는 관찰점수는 최고의 점수에 해당했지만, 나보다 아래 기수인 육사교관의 관찰점수는 바닦권이고 마찬가지로 저보다 아래기수나 비슷한 3사 출신 교관이 주는 점수 역시 바닦권에 해당하여 그동안 벌어놓았던 점수를 까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육사 38기 그넘에게 가서 이만큼 했으면 되었으니, 후배 교관에게 내렸던 계엄령은 해제해달고 한 후..겨우 90.0점이라서 점수를 받고서 육대를 수료한 후..

 

학군 선배가 사단장으로 있는 태풍사단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사단장을 하는 동안 연속 4회라는 대통령부대 표창을 받은 동두천으로부터 전곡쪽으로 전방을 방어하던 전방사단이었습니다.

 

KH-179 155밀리 개량곡사포대대의 대대작전과장으로 보직이 된 후, 아직 전임자가 이사를 가지 않아서 혼자 먼저 이동한 후, 보름정도 뒤에 집사람 혼자서 이삿짐을 싸고서 전방으로 이삿짐차를 타고 오게 되었습니다.

 

보통 남자는 먼저 자대로 가고 부인들이 혼자서 이삿짐을 사서 울면서 이사다니는 것이 군인가족들의 애환이니..어찌 군인남편이 군인마누라에게 잘해 줄 수 밖에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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