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대학원을 졸업한 후 휴가기간 동안 전후방 학군 포병선배님들에게 인사를 다녔습니다. 대부분 처음 뵙는 분들이었지만.. 그만큼 제자신에게 자신이 있었거던요.. 만나는 분들마다 격려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포대장이 되기 전에 교육을 받기 위해 육군포병학교 고군반 교육을 입소했습니다.
제가 국대원을 졸업하다 보니 교육을 너무 늦게 가서 4년 후배들과 같이 받았는데 학생장이라서 성적에는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포병장교로서 경험은 관측장교 1년밖에 없어서 그것을 만회하려고 참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수료할 때 성적은 상 등급과 공로상으로 학교장 표창장을 받고서 전방 포대장으로 가게 되었는데, 저는 지휘관필수직위 보직을 빨리 끝내야만 진급시기를 맞출 수가 있어서 일단 화천의 삼거리에 위치한 모사단의 일반지원 포병대대에 보직을 받아서 독립포대인 중고개 포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임 포대장은 육사 38기 김대위이었는데, 임관연도는 같습니다. 그만큼 제가 늦었다는 것입니다. 통상 포대장은 36개월을 해야 했지만 국대원을 나와서 28개월만 하면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대위급 자원이 부족하다고 그 제도가 폐지되어서.. 동기들은 포대장을 마치고 참모직위를 하고 있을 때 저는 아직도 포대장이었습니다.
김대위는 독립포대장을 하면서, 포대 시험 우승기, 선봉 포대기, 체육대회 우승기 등이 포대장 의자 뒤에 멋있게 진열해 두었는데, 그것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첫 포대시험은 포대장을 나간 지 2주 만에 해서 포대에서 바뀐 것은 포대장뿐인데, 꼴등을 했습니다. 또한 포대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당해연도부터 진급시기가 되어 타출신인 연대보좌관들과 경쟁을 해야 했는데.. 왜 그렇게 나를 나쁘게 평가하는지...
그래도 저는 즐겁게 나의 왕국을 구축하면서 포대장시절을 보냈습니다. 제가 포대장을 시작하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 당시 연대장 육사, 대대장 육사 32기, 그리고 포대장중에는 학군 20기, 육사 39기, 삼사후보생 1기생으로 구성되었고, 참모들은 모두 3사 출신이었습니다. 포대장중에서는 제가 임관이 가장 빨랐지만, 육사출신이 포대장은 제가 포대로 오기 보름 전에 구타사고로 병사가 사망하는 사건으로 사기가 침체되어 있었는데, 독립포대장이었기 때문에 걱정을 들어주려고 제가 전임포대장(육사 38기) 보다 더 잘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도리어 역효과가 났습니다. 자만심이 많다나..
그리고 제가 포대장을 인수인계받을 때 포대에는 많은 건축자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대대장의 내무검사를 받던 중에 대대장님이 어떻게 알고서 여기저기 숨겨둔 건축자재를 대대로 반납하라고 하는데, 그것을 제가 확보했던 것이라면 줄 수도 있었지만 전임자와 병사들이 확보한 것이라서 토요일과 일요일 동안 필요한 비품을 만들고 남은 것을 대대로 반납을 하려고 했는데.. 이틀사이에 밤새워 이것저것을 만들어버리니.. 반납할 게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후 대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