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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전 후 발 전

9. 전 후 발 전 (POSTWAR DEVELOPMENTS) 태평양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2발의 원자탄이 전술적으로 혁명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줄잡아 이야기한 면이 없지 않다. 직업적으로 양성된 야전군이 요새를 유럽국가의 주 방벽으로 바꾸어 놓은 18세기 이후, 군의 (군을 평가하는) 기본적인 척도가 처음으로 변화되었을 것이다. 군사 계산법으로 200년 동안 지속되어 온 소총, 기병도(刀), 그리고 평사포를 셈하는 것을 더 이상 포함하지 않았다. 대신, 권력의회 내에서 한 국가의 영향력은 메가톤만큼 무거웠다. 그러나 야전군이 실시한 요새 교체가 요새를 완전히 쓸모없게 바꾸지 않았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만큼 핵무기의 우세가 재래식 군대를 역사의 뒤편으로 넘기지는 못했다. 그..

포병역사 2007.07.10

제8장 포병 단독으로

8. 포병 단독으로 (Artillery alone) 비록 교리와 전술이 승리의 역할을 했을지라도, 1939년 폴란드전에서 독일은 기술과 수적인 우위(최신 무기로 장비된 규모가 더 큰 현대적인 군이 더 작고 성능이 떨어지는 장비로 무장된 군을 물리치는)로 문제를 쉽게 처리하여 승리를 했다. 1940년 프랑스의 패배는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방법(병력, 사단, 전차, 비행기 또는 평사포의 수)으로 군사력을 계산하면, 상대방과 거의 비슷했다. 독일 승리의 원동력은 그들 부대 규모나 또는 현대화되지 않은 부대를 운용하는 방법에 있었다. 1941년 여름과 가을, 소련에 대한 독일의 대승리에 대해서도 똑 같이 말할 수 있다. 이 승리는 완결되지는 않았지만, 독일군에게는 서부 동맹군에 대한 6주간의 ..

포병역사 2007.07.10

제7장 새로운 전쟁의 시작

7. 새로운 전쟁의 시작 (From one War to Another) 제1차 세계대전의 생존자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주장 중의 하나는 중포병(heavy artillery)이 전투를 지배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포병의 우세가 다음 전쟁에서도 재차 강조되어야 하는 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 되었을 때, 이 주장에 대한 교감은 무너졌다. 1918년 포병 대전투(great artillery battle)에서 미래의 본보기를 보았던 사람도 있었다. 참호전은 이례적이어서 결국 미래의 포병은 강행군을 하는 보병과 기병중대 내에서 움직이는 경평사포라고 주장하는 상반되는 견해를 가진 이들도 있었다. 여전히 중 및 경포병, 체계적인 포격, 그리고 융통성을 동일 체계에 대한 반대도 아닌 보완으로 보는 3..

포병역사 2007.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