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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포병과 보병의 역할

4. 포병과 보병의 역할 (Artillery conquers, Infantry occupies) 독일 육군이 곡사포를 조숙하게 선호하는 지혜를 유럽군에게 확산시킨 것에 추가하여, 서부전선에서 참호전의 시작은 모든 관련자에게 포병을 더 큰 전투에 적합하게 만드는 방법을 재차 생각하도록 강요했다. 혁명적인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처럼, 새로운 조건에 가장 빨리 적응했던 사람과 제도는 과거의 해법에 귀를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쓸모가 없던 수법이 프람더스(Flamders)의 진흙과 캄파뉴(Compagne)의 이회질 언덕에 고착되어 있던 군을 무겁게 압박했다. 참호전에 적용했던 자신들의 방법을 기동전을 준비하는 방법에 자주 반영했다. 포병 전술을 변경하기 위해 처음 투입된 프랑스군 장교중 한 명은 ..

포병역사 2007.07.10

제3장 곡사포의 출현

3. 곡사포의 출현 (HOWITZERS)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된 후 최초 3개월 동안,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접촉한 전장 어디에서나 이야기는 똑같았다. 프랑스 평사포는 상대방 독일 평사포보다 더 멀리, 더 빨리 그리고 더 정확하게 사격을 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프랑스가 경우에 따라 상쾌할 정도로 국지적인 승리를 했지만, 그러나 이와 같은 승리도 가장 실질적인 목적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 확장된 전투에서 독일군 포수는 충격을 최대로 줄이려는 곳에 포탄을 투발하려는 전술적인 감각을 가진 반면, 프랑스군 포수는 효과적으로 보병과 협동할 수 있는 위치에 거의 있지 못했다. 독일군은 우월한 전술 교리와 훈련을 제공받은 장점에 추가하여, 많은 곡사포 재고가 주는 주요한 기술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1..

포병역사 2007.07.10

제2장 신속한 사격으로 발전

2. 신속한 사격으로 발전 (the quick-firing revolution) 영국이 보어 전쟁의 교훈을 책으로 편찬했을지라도, 러일 전쟁(1904~1905)의 사태에 이 교훈을 보편적으로 적용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 전쟁이 아시아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의 규모나 군의 특성은 통상 유럽의 일반 전쟁에 참전했던 것과 흡사했다. 남아프리카 전투에서 진영은 통상 사단급이하 규모로 교전을 했으나, 일본과 러시아는 보어 공화국의 합동 시민집단보다 몇 배나 규모가 큰 부대를 작전지역에 유지했으며. 또한 보어 전쟁에서의 양 진영 군사 지도자들은 아마추어 수준에 쉽게 포함시킬 수 있지만, 러시아와 일본에서는 소대 또는 분대급까지 전문적인 군인들이 지휘를 했다. 비록 한국과 만주에 있던 포병 군수품 저장소(a..

포병역사 2007.07.09